위기의 심화와 구조 개편 <KAA 저널>, 2025년 봄호
2025년은 대한민국에 유료방송이 도입된 지 30년을 맞는 해다. 조금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회사 중 하나인 SM 엔터테인먼트의 창립 30주년이기도 하다. 2025년은 미디어 산업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각별한 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면 대한민국 미디어가 산업화된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지상파방송, 신문 산업도 있었고, 영상산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산업도 있었다. 하지만 유료방송이 등장한 1990년대 중후반부터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은 본격적으로 산업화되면서 양적으로 성장했고 질적으로 도약했다.
국내 레거시 방송미디어의 경우 2010년대 중반부터 광고가 온라인 시장에 추월당하긴 했지만 유료방송 가입자는 꾸준히 증가해 왔고, K-콘텐츠의 위상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동아시아 중심으로 수요가 높았던 대한민국 콘텐츠는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높여 나가면서 아시아를 넘어서는 상징자본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유료방송의 성장률은 둔화되기 시작했고, 방송 재원의 두 축인 광고가 감소하고, 유료방송 가입자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면서 수신료 수익도 한계에 직면하며 사업자 간 분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야외 활동이 어려웠던 코로나 기간 동안 전체적인 미디어 이용량이 늘어나면서 광고 등 레거시 방송 미디어 이용량도 일시적으로 반등했다. 그 과정에서 OTT를 비롯한 디지털 동영상 매체 이용량이 급증하고 동영상 이용 행태는 디지털 위주로 전환되게 된다. 이와 같은 국면에서 한국 영상산업의 주축이었던 극장 산업은 규모가 상당히 위축되어 2024년 기준으로 코로나 이전이었던 2019년과 비교할 때 관객 수 기준으로 40% 정도, 매출액 기준으로는 30% 정도 시장 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거리두기가 종료되자 레거시 방송 미디어의 위기는 본격화된다. 일시적으로 반등했던 방송광고는 대폭 하락했고, 유료방송 가입자는 유료방송 도입 최초로 줄어들었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 방송 산업의 특이점이자 재원의 주요한 축을 담당했던 TV홈쇼핑 산업이 어려워지면서 전체적인 방송 산업의 재원 구조가 악화되게 된다. 국내 TV홈쇼핑은 유료방송 플랫폼에게 홈쇼핑 송출수수료를 지급하면서 저가 구조로 형성되어 있는 유료방송 시장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업을 유지하는데 기여해 왔다. 쇼핑 분야도 디지털 플랫폼 주도로 전환되면서 TV홈쇼핑은 앞으로도 매출 등 재정구조가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 산업의 위축도 콘텐츠 제작 분야 전반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들게 되면 출연진을 포함한 콘텐츠 제작 인력 시장이 위축되게 되고 중·장기적으로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게 되면 콘텐츠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국내 미디어 산업은 1990년대부터 이어진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와 유료방송, 영화 배급시장 등 유통산업의 성장이 맞물려 미디어 산업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고 양적으로 성장해 왔다.
높아진 콘텐츠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전반적인 레거시 미디어 시장의 재정적인 어려움은 레거시 미디어 생태계가 직면한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 시장의 위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치부하고 그대로 지켜볼 일만은 아니다. 더욱이 국내 레거시 미디어들이 겪는 어려움 중 상당 부분이 낡은 규제와도 관련되어 있어 사업자들뿐 아니라 정부와 학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대응할 필요가 있다.
레거시 미디어 시장은 구조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며, 이와 같은 전환에는 OTT와 같은 디지털 매체도 연관될 수 밖에 없다. 거시적으로는 시장의 흐름이 디지털로 넘어가고 있어 디지털 시장을 같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직접적으로는 국내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 가운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지상파 방송사, CJ ENM과 같은 채널 사업자 그리고 통신사들도 OTT와 같은 디지털 매체를 운영하고 있거나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으로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합병이 이뤄지게 된다면 OTT 시장뿐 아니라 연계된 다양한 영상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합병이 성사될 시에는 국내 OTT 사업자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진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플랫폼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합병 당사자뿐 아니라 부처 등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총력을 모아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 중 일부는 시장을 이탈할 수도 있다. 매각을 결정하거나 그도 어렵다면 사업을 접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인터넷 기반으로 매체 이용의 중심이 옮겨갔고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의 구조 개편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는 없다. 정부는 시장의 필요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유연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콘텐츠 강국으로 떠오른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구조 개편은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과정일 수 있다.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양적 성장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가는 것이다. 그를 위해 어떠한 형태의 구조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한 모색과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출처: https://www.kaa.or.kr/k/mag/2025/spring/KAA_journal_2025_spring_Chapter3_2.pdf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KAA 저널> 2025년 봄호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