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9일 – 2026년 1월 4일 주간
개인적으로 구정이 지나기 전까지 새해라는 것을 잘 체감하지 못하는 편이다. 강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개강을 한 이후에야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을 느끼는 편이기도 하다. 연말부터 6분대의 조깅 페이스로 달리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덕분에 80km 이상이라는 목표 마일리지를 채우는 것은 수월해졌다. 문제는 5분대 달리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매일 매일 힘들게 달리던 시기에는 참고 달릴 수 있던 페이스를 견디기가 버거워졌다. 날씨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주에는 90km를 달렸다. 페이스를 올리는 것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20km의 벽이다. 다음 주는 LSD로 23km를 달려볼 생각이다.
이번 주는 어쩔 수 없이 김영대 평론가와 <더 송라이터스>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연말연시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시기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상과 같은 주변 사람들의 부고가 많이 들려 온다. 효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는 20대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의 상가에 가거나 소식을 접하면 종종 먹먹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최근 몇 년간 유독 주변 사람들의 상실을 자주 접했고, 작년에는 가까운 분 중 건강이 안 좋아지신 분들이 꽤 있다. 새해에는 빠른 쾌유를 빈다.
연말의 과제들을 마감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날 접한 김영대 평론가의 부고는 처음에는 거짓말 같았고, 사실인 걸 확인한 후에는 먹먹해져서 한동안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김영대 평론가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말을 보탤 수 있을 만큼 그와 인연이 있지는 않다. 나는 김영대 평론가를 세 번 봤는데, 두 번은 학회에서 한 번은 <100분 토론>에 같이 패널로 참여했다. 처음 학회에서 봤을 때는 인사할 기회가 없었고, 두 번째 학회에서 만났을 때는 인사를 청했을 때 반갑게 응해 주었던 그의 친절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100분 토론>에 같이 패널로 참여했을 때 내가 이전에 세미나에서 했던 코멘트를 찾아보고 오지 않고는 하기 어려웠던 말로 자신의 발언 기회를 마감했던 그의 섬세함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녹화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이전에 세미나에서도 본 적이 있다는 말만 주고받았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볼 기회가 있다면 그의 후의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 그럴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그의 유작으로 기억될 <더 송라이터스>는 나와 같이 90년대 발라드가 10대와 20대 초반의 감수성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세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나는 발라드를 통해 처음 사랑을 배웠다(14쪽).”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인생’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리라. 그 찌질함과 대책 없는 감정 과잉에도 불구하고 나는 90년대의 발라드를 너무도 사랑했다. 이승환, 015B, 토이 등으로 한국형 발라드에 입문한 나는 사후적으로 유재하를 알게 되었고, 많은 발라드 팬들에게 그러하듯 유재하 1집은 나에게 각별한 앨범이다.
“음악을 통해 살펴본 한국인의 사랑과 이별과 후회와 설렘과 찌질함에 대한 연대기, 바로 위대한 발라드 송라이터들과 우리가 공유해온 ‘사랑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24쪽).” 나는 여전히 90년대 발라드가 내게 미친 정서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발라드로 배운 ‘사랑의 역사’는 이제 내가 상실한 것들에 대한 애도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어제 30년 지기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지방에 다녀왔다. KTX에서 읽은 <더 송라이터스> 덕분에 더클래식의 ‘내 슬픈만큼 그대가 행복하길’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주말 내내 듣고 있다. “나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나 대중이 공유하는 보편적 정서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34쪽).” 시대를 함께하는 모두가 공유하는 정서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1990년대 한국형 발라드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가 분명히 있고, 각자에게 달리 변주되었을 지라도 그 영향은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서도 유재하의 지난날이 들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