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서와 무지개 나선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철학과 장애인을 이해하는 관점이 마주 닿는 기쁜 발견

by 네딸랜드

관광도시가 밀집되어 있는 네덜란드 남부에 위치한 림버흐(Limburg)주의 발켄부르흐(valkenburg)에는 우리가 꿈꾸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단다. 그것도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작품이 있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마을에 예술작품이 존재하게 되었을까? 그는 최고의 건축가이자 화가이고 환경운동가란다. 별명도 근사해.

'건축 치료사'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떠날 채비를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한 발걸음 내내 엄마는 내심 흥분이 되어있었단다. 너희들은 이 곳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게 될까?

아저씨라고 하기엔 할아버지 같은 가이드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주셨지.

건물 입구 안내

훈데르트바서는 비를 참 좋아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하는 날 비가 내리니 그를 만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도 들었단다. 유럽 각지에 그의 작품들이 있고 일본에도 있는데 우리나라엔 왜 없냐고 묻던 너희들. 두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이 하고 설명을 들은 후 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이 휴가를 보내는 바캉스 하우스를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사전에 방문 예약을 했기에 다과시간에 가이드의 설명을 먼저 듣는다. 右 도서관 안에 비치된 훈데르트바써 책 -

左 장애영유아들을 위한 놀이실 右 부엌- 장애인 가족들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左 물침대 근육이완 치료실, 캐노피와 조명 때문에 공주방 분위기가 난다 右 장애인 가족을 위한 일반 침실

화장실, 부엌, 컴퓨터실, 도서실, 영화관, 휴식공간, 놀이실 등을 차례로 돌아보았고 물침대방에서는 공주방처럼 캐노피가 드리워져 있었고 직접 물침대 위에 누워보고 천정의 별들이 색색 조명에 반짝거리는 것을 보며 무척 흥분해 있었던 너희들이었단다. 바깥으로 나가 옆 건물로 건너가는데 다리 아래 연못에 잉어가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소리 지르고 좋아하였던 너희들. 옆의 무지개색 건물이 나선으로 되어 있기에 나선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알라딘 램프 같은 지붕이 있었지. 그 바로 아래에서 바라본 주변 경관은 여느 휴양지 못지않은 편안함과 멋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나선을 따라 내려오면 마당이 나오고 그네가 있고 미끄럼틀이 있고 시소가 있고 야외 창고가 있고 분수가 있고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모래밭이 있고... 차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벤치와 어여쁜 식탁이 있는 곳.

화장실마저도 세심하게 만든 그곳을 보며 너희들은 이리 말했다.


'엄마 여기 다음에 또 와'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비도 그치고 해가 나는 것을 보며 엄마는 마음속의 새로운 태양을 마주하게 되면서 울컥하리만치 뿌듯하고 감사하였단다.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으며 너희들에게 물었지.

오늘 아저씨에게 들은 설명 중에 기억에 남은 것 엄마에게 이야기해줄래? 이것저것 본 것 중에 인상적이었거나 좋았던 것도 생각나는 대로 말해주렴. 첫째부터 막내까지 너희들은 앞다투어 말을 쏟아내었다.

자유로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응접실
가이드투어 설명을 듣기 시작하는 곳이자 도서실이기도 하다. 벽 모서리도 곡선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원래 이름이 아니래. 물을 좋아해서 평화로움과 풍요로움이 흐르는 100개의 물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대"

"여행을 좋아하고 나중에 뉴질랜드에서 죽었다고 그래"



"직선을 싫어해서 건물을 지을 때 부드럽게 곡선으로만 만들었대"

"건물 안의 검은색은 물을 상징하고, 갈색은 땅, 빨강과 노랑은 꽃을 나타낸 거래"


"나선을 좋아해서 모든 건물을 나선형으로 설계했대"

"엄마 이 아저씨는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다녔어. 건물을 지을 때 창문을 모두 다르게 만들었대 전등도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대. 이것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지 않고 다르기 때문이래"

"모든 건물의 지붕도 다 버섯모양처럼 만들었대"

"화려한 색을 좋아해서 건물에 예쁘게 색을 입혔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로비

"건물마다 특이한 기둥을 세웠대"

"자연을 좋아해서 건물을 지을 때 자연의 모습을 담았대. 그리고 꽃과 나무를 꼭 심었대"

"훈데르트바서는 두더지를 제일 예쁜 동물이라 생각했대 "


"그리고 미국의 어떤 사람이 장애인들 가족들이 떨어져 지내면서 같이 지내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한 집을 지어주고 싶었대 그래서 여기에 병원도 있고 학교도 있고 방학 때는 가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을 지었다고 그래"

"엄마 난 물침 대방이 너무 좋아. 나도 물침대로 바꾸어줘"

"아저씨가 맛있는 파이랑 음료수도 주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도 또 주고 너무 좋아요. 놀이방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고 밖에서 시소도 타고 그네도 타고 아주 재미있었어요"

"지붕에서 이 동네 바라보니까 신나요. 저기 성 같은 것이 호텔이라니..."


-마치 지붕이 언덕 같은 구조, 장애인의 가족과 친구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다-


너희들이 참 잘 들었구나. 게다가 설명을 들은 시간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너희들을 보니 많이 컸구나 싶었다. 엄마는 가슴이 찡하리만치 너희들이 대견스러웠고 감사했단다. 장애인들을 자연스럽게 대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철학과 절묘하게 통합된 이해과정을 거친 것이!


로날드 맥도널드 자선재단은 중증장애인이나 중병을 앓고 있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후원하는 자선재단이다. 우리 주변에는 심각한 장애나 질병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격리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무수히 많단다.

左 훈데르트바서의 노년의 모습 中로날드 맥도널드 재단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右 재단후원 기업 맥도널드-

치료라는 이름으로 보호라는 미명 하에, 전문적 도움이라는 슬로건 아래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감당해야 하는 슬픈 사람들이 있단다. 이러한 아픔을 직접 겪었던 필라델피아 이글스 미식축구 선수 프레드 힐과 이글스 감독 짐머 레이가 만든 재단이야. 여기에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맥도널드 재단의 아름다운 협업으로 이루어진 자선사업에 훈데르트바서의 콜라보가 펼쳐진 것이란다.


바로 그러한 아름다운 공간 중 하나가 오늘 너희들이 방문한 무지개나선(Regenboogspiraal;rainbow sprial)이라 불리는 킨더발레이(kindervallei)란다.


어두운 곳에서 숨겨진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건축 치료사의 마법이 필요했던 것이야. 뛰어난 건축가로서의 훈데르트바서. 화가로서의 훈데르트바서. 이보다 더 진한 울림으로 벅찬 감동을 준 것은 그의 철학이자 신념이었단다.


한국방송공사(KBS)가 선정한 한국 10대건축물 수상작인 밀알학교


우리나라에도 그런 비슷한 시도가 있었단다. *님비현상의 중심에 있던 사건이자 그것을 극복한 사례로 간주되어지는 밀알학교(발달장애아 특수학교) 설립 이야기.


*님비현상(NIMBY; Not In My BackYard) 혐오시설이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는 현상


서울 강남의 한 복판에 혐오시설 중의 하나로 인식되어진 특수학교가 설립된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건립을 반대했었지. 지역이기주의라고도 지칭한다(지금은 지역사회 주민이 오히려 협조적이다). 학교 건물 설계부터 최고의 가치를 입히려는 노력이 가상했단다. 최고의 건축가 중의 한 명인 유 걸씨가 설계하고 중국의 세계적인 도자기 작가 주락경 씨가 만든 도자기 홀은 여느 멋진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축물이란다.


자칫 어울릴 것 같지 않고 어울려서는 안 될 것 같은 칙칙한 특수학교에 최고의 예술을 입혔단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고맙고 기특한 일이 발생한다. 아픈 사람은 누워 있어야 하고 힘든 사람은 쉬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은 찌질하게 살아야 하고 장애인은 그냥 남의 도움이나 받고 먹고 자는 1차적인 생존만 유지하면 된다. 이렇게 치부하며 자신의 도의적, 양심적, 학문적, 사회적 양심을 묻어버리며 외면하고 사는 이들에게 이는 혁명 같은 사고이자 도발적인 행동이었던 것이지. 엄마가 사랑하는 한국땅에서 말이다.

생존만 해결되면 다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무시되어지기 쉽고 잠식되어졌던 문화적 욕구와 충족을 선물해 준 것이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최고의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치유였다.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자신 자신이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산다고 느끼게 한단다. 이 것이 얼마나 거룩한 행위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해주는 새로운 이정표가 된 사건(event)이란다.


밀알학교와 최고의 건축가와 최고의 예술의 만남이라는 거대한 사건!


그러한 맥락에서 훈데르 트바서와 로날드 맥도널드의 아름다운 협력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까? 당시의 정황을 정확하게 조사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유명한 관광도시에

킨더발레이가 지어질 때 님비현상은 없었던 것 같구나. 여기서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서럽게 부럽도록 확인하게 된다.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휴양소(바캉스 하우스)를 최고의 건축가가 명당자리에 지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사회에 얼마나 고무적이고 도전적인가.

이러한 의미에서 밀알학교의 길고 긴 건립과정과 그 역사는 한국에서 새 지평을 열어준 셈이다


다이닝룽에서 요리하고 다과시간을 갖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


좋을 일일수록, 가치 있는 일일수록 더디고 느리게 또는 힘들게 이루어진다. 여기에 소망을 품어야 한단다.

너희들이 오늘 여기서 엄마에게 보여준 희망도 그러한 것이리라!


느리지만 더불어 함께 걸어가는 길. 그것이 지름길이다.


우리가 혼자서 꿈을 꾸면 오로지 꿈에 그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 된다.

- 훈데르트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