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입가경 Feb 27. 2020

이상형

After Hanabi-listen to my beats- Nujabes

https://youtu.be/QkC2dHTDrVo


*오늘의 글과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는 'After Hanabi-listen to my beats- Nujabes'입니다.

(컴퓨터/아이패드 환경에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실  있습니다.)


스물넷 영어학원에서부터 동경하는 언니가 있다. 나보다 세 살 빠른 그 언니는 향수 두 개를 레이어링 해 뿌리는 사람. 가까이 올 때마다 꽃이 핀 나무 향기가 났다.


수제 캔들을 만들자. 언니는 권하는 사람이었다. 죽이 잘 맞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언니네 집으로 갔다.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는 홍제동 투룸 빌라. 가방을 놓으러 들어간 방 안에는 벽의 길이에 꼭 맞게 끼워진 책상이 있었다. 동네의 목공 할아버지께 직접 의뢰해 짠 것이라고 했다. 왼편은 글쓰기 공간으로, 오른편은 도구가 필요한 작업 공간으로 나눠 놓았으며, 양쪽 모두 쓰임의 흔적이 공평했다.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구석에는 침대와 전신 거울이 있었다. 전신 거울을 타고 느리게 눈을 깜빡이듯 반짝이던 알전구는 선별된 비디오들이 쌓인 구석 공간까지 길게 이어졌다. 백 투 더 퓨처, 타이타닉, 번지점프를 하다, 지구를 지켜라 같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는 방문과 창문을 열고 향을 켰다. 그때 인센스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수제 캔들을 만들어보는 것도 물론 처음이었다. 언니의 리드에 따라 잘 씻어서 말린 유리병에 심지를 붙이고, 왁스를 녹여 일정 온도가 되었을 때 향을 섞어 병으로 부어냈다. 작업 책상 위에 줄 서 있던 빈 유리병들이 찰랑찰랑 따뜻해졌다.


배고프지? 왁스가 하얗게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 언니는 메밀국수를 말았다. (그때는 초여름이었다) 냉동실에 살짝 얼려둔 육수를 붓고, 찬물에 씻은 면과 채 썬 오이, 방울토마토와 반숙 계란 한 개를 통째로 올린 그릇. 기념으로 음식 사진을 몇 장 남기고 그릇을 들어 육수를 들이켰다. 슬러시 질감의 얼음이 윗입술을 스쳐 호로록 들어왔다. 환상의 여름 맛. 맛본 사람들의 눈에 별이 떴다. 나는 박수를 쳤다. 언니는 제 그릇을 마지막으로 들고 와서, 감탄하는 사람들 사이에 몸을 끼워 앉으며 말했다. 왠지 너희들이랑 이 육수를 개시하고 싶더라고.


언니를 닮고 싶었다. 자신의 향기와 루틴이 있는 사람, 필요하다면 캔들부터 책상까지 만들어 쓰는 사람, 움직임 몇 번으로 주변을 환기하는 사람. 언니는 스물넷에게 근사한 이상형이었다. 독립한다면 언니처럼 집을 대하고 싶었다.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접하고, 자신을 돌보고 싶었다.


이제는 그때 스물일곱이었던 언니보다도 내가 네 살이 많아졌지만 나는 아직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도 모른다. 점심으로 먹은 청국장 냄새가 잘 안 빠져서 온몸을 퍼덕이며 다녔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