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오 (Mui Wo)에서 선셋피크 (Sunset Peak)까지
공항 큰 전광판에서 내 비행기 체크인 카운터를 확인하는데 내 비행편이 없다. 7시 45분 비행기인줄 알고 5시 45분까지 공항에 왔는데 알고 보니 9시 45분 비행기였다. 비행기 시간보다 4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더 잘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장기 여행을 해서 감을 잃었나. 아니면 긴장했나. 이미 공항에 왔는데 어떡하나. 일단 배가 고프니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배를 채우고 나니 카운터가 오픈해서 얼른 체크인을 했다. 요즘엔 보조배터리 규정이 까다로워져서 와트 수를 검사하고 플러그 부분에 절연 테이프도 붙여야 했다. 나는 2만짜리 하나랑 만짜리 하나를 준비했다.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로 들어 가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넬리님 맞으시죠? 수화물에 배터리가 있어서 빼 주셔야 할 것 같은데”
맞다. 인스타 360이랑 미니드론에 배터리가 있다. 이 카메라들을 들고 처음 해외에 나가는 거라 깜박했다. 수화물 관리실에 가서 배터리를 분리해서 보조가방에 다시 담았다.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두시간만에 벌써 해프닝이 두개다.
게이트로 가서 입국심사를 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잠을 많이 못자기도 했고 긴장이 풀렸는지 의자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홍콩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으로 12시 45분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나와서 유심부터 샀다. 그리고 옥토퍼스 카드를 자판기에서 샀는데 충전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한참을 기계와 실랑이하다가 일단 퉁청 (Tung Chung)라인으로 가는 MTR을 탔다. 나중에 뭐라고 하면 몰라서 그랬으니 돈을 내겠다고 하면 된다. 다행히 내려서 역무원에게 설명하니 카드충전까지 해준다. 유심카드 직원도 지하철 역무원도 홍콩사람들은 친절하다.
MTR을 한번 갈아타고 퉁청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러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밖으로 나오니 쨍쨍한 여름이다. 3M버스를 타고 무이오 (Mui Wo)로 가야 하는데 도무지 어디서 버스를 타는지 모르겠다. 버스 정류장을 비잉 한바퀴 돌았다. 3M 버스 타는 곳이 나타났는데 방금 버스 하나가 떠났다. 15분 기다렸다가 버스를 탔다.
안내방송에서 ‘무이오’라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가도 말이 없길래 구글맵을 봤더니 무이오는 이미 지나쳤고 거기서 두 정거장을 더 지나치려고 한다. 얼른 내려서 이소가스를 살 캠핑샵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내린 곳에서 캠핑샵까지는 걸어서 8분거리다. 걷기 시작하니 잘못 내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이오는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바다를 따라 길을 잘 만들어 놨다.
지도를 보고 따라간 캠핑샵은 셔터가 내려져 있다. 아예 폐업했다.
이제 어떡하지. 이소가스를 사러 다시 시내로 갈 수는 없다. 요리를 할 수 없으니 바로 먹을 음식이라도 사야 한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있는 대로 쓸어 담고 한국에는 없는 소맥 한 캔을 사고 조그만 중국술도 하나 샀다. 가방이 꽤 무거워졌다.
배가 너무 고프다. 바다뷰가 보이는 식당에 앉아서 맥주와 볶음밥과 완탕국수를 시켰다. 2인분을 먹어야겠다. 정말 배 터지게 먹었다. 170 홍콩달러다. 한국돈으로 3만 2천원쯤 된다.
시간이 벌써 4시반이 되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들머리인 남산에서 오늘 머물려고 생각했던 선셋피크 (Sunset Peak)까지는 4키로다. 버스를 타고 남산으로 갔는데 이미 5시반이다. 다른 선택지는 들머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캠프사이트가 있어서 거기서 자는 거다.
선셋피크 사진 한장 보고 홍콩에 오기로 결심했는데 야간 등산할 각오하고 미친듯이 한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거의 안 쉬고 숨 넘어가도록 계속 걸어 올라갔다. 사진 찍을 여유도 없어 사진도 몇 장 못 찍었다. 땀이 비 오듯이 온다. 한시간쯤 걸으니 엄청난 뷰가 나를 반긴다. 해가 떨어지려고 한다. 더 속도를 내서 해가 지기 직전에 박지에 도착했다. 텐트를 다 치고 나니 바로 깜깜한 밤이다. 내일 해가 뜨면 여기는 얼마나 더 멋질까. 무리해서 올라오길 잘했다.
내일 갈 길은 더 멀다. 20키로는 걸어야 한다. 얼른 정리하고 자야지.
홍콩의 첫날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