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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미

by Nel

집의 의미 첫 기억의 공간

사람들은 종종 물어봅니다.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그러면 나는 잠시 망설입니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가 명확한 기억,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건보다는 어떤 감각, 어떤 느낌, 어떤 빛의 색깔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언제나 '그 집'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첫 기억은 집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의식이 깨어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를 감싸고 있던 것은 벽과 천장, 창문과 문, 그리고 그 안을 채우고 있던 온기였으니까요.


기억의 시작, 혹은 기억의 부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유아기 기억상실'이라 부릅니다. 보통 3-4세 이전의 기억은 희미해지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우리는 첫 집에 대한 기억을 주로 가족 앨범 속 사진들, 부모님의 이야기, 그리고 간혹 불현듯 찾아오는 단편적인 감각의 조각들을 통해 재구성합니다.

어머니의 옛 앨범을 펼쳐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붉은 벽돌집 앞마당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 거실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나, 부엌 바닥에 앉아 냄비 뚜껑으로 장난치는 나. 그 사진들 속에서 나는 그 집을 다시 만납니다. 사진은 말합니다. "여기, 네가 처음으로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곳이야."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사진을 보면 볼수록 실제로는 없었던 기억이 생겨난다는 점입니다. 사진 속 빨간 소파의 감촉,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던 오후의 햇살, 세발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느껴지던 저항감. 이것들은 진짜 기억일까요,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상상일까요? 어쩌면 그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모호할지도 모릅니다.


감각으로 남아있는 첫 집

진짜든 상상이든, 첫 집에 대한 기억은 주로 감각적입니다. 논리나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기억됩니다.

나의 경우, 그것은 오후의 특별한 빛입니다. 봄날 오후, 거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 속에 누워 있던 순간. 등은 따뜻한 햇볕에 데워지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이마를 시원하게 어루만지던 그 느낌. 어머니가 빨래를 널러 나가시고 없던 그 짧은 시간, 나는 아마도 처음으로 세상과 나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나는 '나'가 되었고, 그 집은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은 냄새입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던 오래된 감나무의 향기, 비 내리는 날 마루에서 나던 나무 향,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할 때 부엌에서 피어오르던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 이 냄새들은 지금도 종종 불현듯 찾아와 나를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데려갑니다. 프루스트가 말했듯, 냄새와 맛은 과거로 가는 가장 강력한 열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리. 아버지의 발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오면, 그날의 저녁은 조금 더 특별했습니다. 나무 바닥을 울리던 그 발걸음 소리는 안전과 기대감을 동시에 의미했습니다. 겨울밤 창문을 때리던 빗소리, 여름 아침 처마 밑에서 지저귀던 새들의 노래, 옆집에서 들려오던 피아노 연습 소리까지. 그 집은 소리로도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감각의 기억들은 단순한 향수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초가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초기 경험이 우리의 안전 감각, 세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 그리고 자아감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공간

첫 집의 기억은 그 공간 자체보다 함께했던 사람들, 특히 부모님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이에게 집은 곧 부모이기도 합니다. 집의 따뜻함은 곧 부모의 사랑이고, 집의 안전함은 부모의 보호입니다.

어머니가 빨래를 개고 계실 때, 나는 종종 그 옆에 앉아 작은 손수건을 어설프게 접곤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손과 내 손, 그 사이에 놓인 하얀 수건은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 없이도 그 작은 행동으로 나에게 '함께함'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마당의 풀을 깎으셨습니다. 나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작은 장난감 풀깎이로 아버지의 움직임을 흉내 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웃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가사 노동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이었습니다. '집을 돌본다'는 것의 의미를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죠.

이런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체득합니다. 그리고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관계와 소속감의 구체적 형태로 우리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집이 가르쳐준 세상의 질서

첫 집은 우리에게 세상의 기본 질서를 가르쳐줍니다. 문은 열고 닫는 것, 계단은 조심히 오르내리는 것, 창문은 바깥 세상을 보는 틀이라는 것. 이런 기본적인 공간의 문법을 통해 우리는 경계와 통로, 안과 밖, 위와 아래라는 개념을 배웁니다.

나의 첫 집에는 작은 계단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 기어 올라가던 그 계단을, 어느 순간부터 뛰어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공간을 정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법을 말이죠.

집 안의 각 공간은 각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엌은 변화와 창조의 공간이었습니다. 재료가 음식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 거실은 공유와 대화의 공간, 침실은 휴식과 꿈의 공간, 욕실은 정화와 재생의 공간. 이렇게 첫 집은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축소해 놓은 모형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공간적 경험은 추상적 사고의 기초가 됩니다. '위'와 '아래', '안'과 '밖', '열림'과 '닫힘'과 같은 기본적 개념들은 나중에 우리가 더 복잡한 추상적 개념을 이해할 때 사용하는 인지적 도구가 됩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그의 저서 「공간의 시학」에서 말했듯, 집은 우리의 "첫 번째 우주"이며, 모든 이후의 공간 경험의 원형이 됩니다.


안전과 모험 사이에서

첫 집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은 끊임없는 탐험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서랍 속의 숨겨진 보물들, 이불 밑의 비밀 동굴, 옷장 안의 또 다른 세계. 아이들은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합니다.

내가 다섯 살 때였을까요, 나는 우리 집 다락방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사다리를 올라 좁은 문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그곳은, 내게는 마치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과도 같은 마법의 공간이었습니다. 오래된 상자들, 먼지 쌓인 책들, 창문으로 비치는 이상한 빛. 그곳에서 나는 공주가 되기도 하고, 탐험가가 되기도 하고, 과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첫 집은 안전함과 모험, 익숙함과 신비로움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성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안정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존재니까요.


상실과 그리움의 시작

많은 사람들이 첫 집을 떠나는 경험을 합니다. 이사, 입학, 부모의 이혼 등 다양한 이유로. 그리고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배웁니다.

일곱 살 때, 우리 가족은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학교, 더 많은 기회를 위해서였죠. 어른들의 언어로는 '더 나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내게는 첫 번째 상실의 경험이었습니다. 익숙한 창문의 모양, 내 키에 맞춰져 있던 문손잡이의 높이, 내 방 천장에 붙어있던 별 스티커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새 집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밤에 화장실을 찾아가다 길을 잃기도 했고, 창문의 위치가 달라 아침 햇살이 다른 방향에서 들어와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그 공간도 '집'이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집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 채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고향'이라는 개념을 형성합니다.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돌아갈 수 없게 된 그 첫 번째 공간에 대한 그리움.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근원을 향한 끌림입니다.


정체성의 기초석

첫 집은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곳에서의 경험, 그곳에서 배운 가치, 그곳에서 형성된 관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우리 집 거실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책장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글을 읽을 수 없었을 때부터, 나는 그 책장 앞에 앉아 책들의 등판을 만지작거리며 놀았습니다. 책의 냄새,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그리고 부모님이 책을 읽으시며 보이던 집중한 표정.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책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우리 집 주변의 자연환경 - 마당의 나무들, 근처 작은 개울,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 - 은 내가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나무 아래 앉아 있거나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곤 합니다.

이처럼 첫 집은 우리의 취향, 가치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기초가 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내면의 지도를 그리는 첫 번째 붓질과도 같습니다.

신화가 된 첫 집

시간이 흐를수록, 첫 집은 점점 더 신화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부분적으로 기억나는 조각들, 가족들의 이야기, 사진,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뒤섞여 만들어진 이 '신화적 공간'은 실제 그 집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서른이 넘은 지금, 가끔 꿈에서 나는 그 첫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 속의 그 집은 실제보다 훨씬 넓고, 방의 구조도 다르고, 때로는 전혀 기억에 없는 비밀 방이나 통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꿈속의 집은 실제 집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내 무의식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심리적 풍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첫 집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원형적 이미지, 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집합적 무의식'의 일부가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첫 집

누구에게나 첫 집은 특별합니다. 그것이 화려한 대저택이었든, 작은 아파트였든, 시골의 초가집이었든 상관없이. 그곳은 우리가 처음으로 세상을 마주한 곳이고, 처음으로 사랑받고 보호받은 곳이며,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한 곳입니다.

첫 집에 대한 기억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입니다. 디테일은 다를지라도, 그 감정적 울림은 매우 유사합니다. 따뜻함, 안전함, 소속감, 그리고 때로는 상실과 그리움. 이러한 감정들은 인류 보편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문학, 영화, 음악 등 예술 작품에서 '집'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에서부터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했던 캔자스의 집까지, 집은 인류의 집단적 상상력 속에서 강력한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첫 집, 영원한 거처

첫 집의 의미는 우리가 나이를 먹고, 다른 집들을 경험하고, 심지어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가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고 풍부해집니다.

때로는 완전히 잊고 있다가도, 특정한 냄새나 소리, 빛의 각도에 의해 갑자기 첫 집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잠시나마 그 첫 번째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첫 집은 물리적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의 집이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그 집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적 고향, 영원한 거처입니다.

독일어에는 '하이마트(Heima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고향'이나 '집'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며, 정체성과 소속감의 근원을 지칭합니다. 우리의 첫 집은 바로 이 '하이마트'의 물리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첫 집, 나의 시작

결국, 첫 집에 대한 기억과 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첫 집의 따뜻했던 부엌은 나에게 음식과 나눔의 가치를, 빛이 가득했던 거실은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작은 정원은 자연과의 교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지금의 내가 집을 만들고 살아가는 방식에도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첫 집은 우리 모두에게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의 깊이와 광범위함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지도를 그리는 첫 번째 붓이며, 그 선들은 평생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문득, 창문으로 들어오는 특정한 각도의 빛,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 빗방울이 지붕을 치는 리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나는 잠시 그 첫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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