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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Sep 17. 2021

자기만의 방에서 서성이다


브런치에 '비혼 중년의 사생활' 매거진을 열었다고 한 친구에게 알렸다. 그러자 친구는 비혼은 어떻게 사는지, 너무 알고 싶으니까 제발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다. 나는 숨어있는(?) 비혼의 희미한 연대를 위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의외로 결혼한 친구가 가지 않은 길, 즉 '비혼'의 사생활을 더 궁금해 했다. 


비혼과 기혼을 나누는 말 자체가 결혼을 축으로 삼고 있어서 마뜩잖지만 현재까지 마땅한 말이 없다. 비혼이란 말부터 살펴보면 비혼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미혼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어서 언젠가 결혼을 할 거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나는 '비혼주의자'란 말을 싫어한다. '-주의자'란 말에는 결연한 자유 의지가 들어있다. 인생은 단정한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결혼이나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연애할 때도 내 생활이 흐트러지는 걸 못 참았다. 무엇보다 배우자에 대한 고민보다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때 입시 압박감 속에서 뜻도 모른 채 탐독했던 세계문학 탓인지도 모른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 고전 소설 등에서 결혼한 여자는 늘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 삶이든 불행만 있는 게 아니라 즐거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어린 눈에는 결혼하면 출산과 육아 때문에 무덤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비혼주의자로 살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지만 외로움을 잘 몰랐고, 호기심 천국의 시민이라 세상에는 재미난 것이 많았다. 밤새 술마시고 놀기도 했고, 여행은 내 인생의 일부였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다른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했다. 


사십이 넘어서는 시가에만 가면 고구마 백 개쯤 먹은 기분이라는 친구들 덕분에 우리 말에서 결혼으로 파생되는 관계를 지칭하는 말의 다양성을 고찰하곤 했다. 호칭 속에는 '결혼'이란 제도가 우리 의식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드러난다. 영어로는 싱글, 메리드이다. 싱글에는 비혼자와 이혼자 모두가 포함되어 배우자가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 결혼 후 문제가 되는 확대 가족의 호칭도 단순하다. father in law, mother in law, sister in law, brother in law 등이다. 법적으로 맺어진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이다. 시가인지 처가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 말에서는 법적으로 얽힌 가족을 지칭하는 말을 따로 익혀야할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다. 갑자기 불어닥친 호칭 홍수에 질식할 것 같다. 


아직 결혼 안 했어요와 비혼이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뭘까? 역시나 생물학적 나이인 것 같다. 마흔 중반쯤 되면 비혼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많다. 배우자를 선택할 폭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나이까지 혼자 잘 살아왔는데 굳이 안 맞는 사람과 결혼할 대의명분이 없다. 내 눈에 콩깍지가 나타난다면 모를까. 


콩깍지는 중년에도 가능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생각은 글쎄, 이다. 비혼 중년으로 사는 것은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 여가 시간에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활동에 몰입한다. 인간 관계는 일로 만난 사람들, 취미로 만난 사람들, 학교 친구들이 포진한다. 적절한 거리를 두는 관계라 가끔 적막하기도 하지만 이 적막함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이다. 감정의 파도도 비교적 잔잔하다. 물론 감정이 출렁일 때도 있지만, 심하게 출렁이면 비혼으로 살기 쉽지 않다. 또 중년까지 비혼으로 살았다면 출렁이는 감정을 다독이는 자신만의 방법도 있다. 자기계발에, BTS 덕질에, 여행에, 여러 가지 체험 등등에 시간과 물적, 심적 에너지를 쓴다. 결국 이런 모든 활동이 자기만의 성을 쌓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유유상종이라 비혼 친구들이 여럿 있다. 나를 비롯한 비혼 친구들은 서로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각자의 생활 방식을 존중한다. 연락이 없어도 잘 지내겠거니, 하는 믿음이 있다. 가끔 만나서 밀린 수다를 폭풍처럼 쏟아내고는 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실천한다. 크고 작은 모든 결정을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하는데 결정에는 항상 책임이 따라오기 때문에 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둘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즐거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비혼의 장점은 무엇보다 자유 시간이 많고, 이 시간을 모두 나에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행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것도 육아와 가정생활에 할당된 의무가 없기에 가능하다. 비혼 중년은 육체적으로 쇠락의 문턱에 다다랐고, 정신적으로도 소용돌이 친다. 길어진 기대 수명 탓에 혼자 보낼 시간이 앞으로도 많다. 사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한 친구에게 "미래가 불확실해서 불안할 때가 있어."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는 "그건 결혼해도 마찬가지야. 애들 키우며 살다 보면 미래가 불확실한지 생각할 틈도 없어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비문학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면 찬반 양론으로 대립할 때가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피가 튀는 대신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자신의 삶을 대입하고 등장 인물을 이해하려고 한다. 문학 작품에서 다루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다. 인간의 삶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찬반 혹은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 없다. 어떤 형태의 삶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 작품에 대해 토론할 때는 입장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자기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다만 가지 않은 길이 궁금하다면, 중년 비혼이 바라보는 삶의 풍경을 따라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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