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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Favorite Thing Nov 03. 2016

인공지능과 인공감정 그리고 로봇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올해 IT 업계 및 바둑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벤트는 역시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기사인 알파고의 대결이었다. 다섯 판을 둔 결과는 알파고의 4승 1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알파고의 1패이다. 이세돌 9단이 올린 1승은 인공지능과의 바둑 대결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승리한 1승으로 기록될 확률이 높다.  

첫판부터 자신의 전력을 최대로 올려 겨루게 되는 사람 대 사람의 대결에서와 달리, 알파고-이세돌 대결의 경우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통해 알파고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알파고 개발자는 제1국에서 알파고의 수준을 중간으로 맞춰 시작했을 것이다.            

이세돌 9단(왼쪽)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모든 게임에는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알파고의 성능을 테스트하고자 하는 구글은 처음부터 최고의 난이도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난이도로 시작해서 진다면 난이도를 높이고 이긴다면 한 단계씩 난이도를 낮춰서 어느 수준으로 이세돌 9단을 이길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첫 판을 이겼으니 두 번째 판은 중간 난이도에서 한 단계 수준을 낮추었을 것이고 난이도를 낮춘 두 번째 판도 이겼으니 세 번째 판 역시 난이도를 한 단계 더 낮추었을 것이다. 난이도를 세 단계 낮춘 네 번째 대결에서 이세돌이 승리를 따내게 되었고 다섯 번째 판은 세 번째 대결의 난이도로 다시 올려서 마지막 판을 알파고가 승리하게 되었다. 즉 알파고의 수준에 대해선 5전 4승으로 승수가 많으니 이세돌 9단보다 높다고 보기보다는, 중간보다 세 단계 정도 낮추었을 때 이세돌 9단과 비슷한 실력이 된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바둑 이전에 있었던 컴퓨터와 인간의 체스 대결을 보면 초창기에는 인간이 컴퓨터에 승리를 했지만 인공지능 컴퓨터인 IBM의 딥블루가 1996년 탄생하고 1997년에 체스 챔피온인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한 이후 지금까지 체스로 딥블루를 이긴 사람이 없다.  

알파고의 승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의 일을 빼앗고 나중에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달만 가지고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공지능이 이세돌을 이긴 게 인공지능이 위험하다는 신호가 아니고 네 번째 판에서 졌다고 바둑판을 엎어버린다면 그게 위험한 신호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위험한 게 아니라 ‘인공감정’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공지능이 정말 인간과 닮을 정도로 발달한다면 인간처럼 농땡이를 부리거나 파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공감정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것 같지는 않다. 인공감정 역시 인공지능과 마찬가지로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분야인데, 아직까지는 인간적인 감정을 만들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몇 년 후에는 충분히 인공감정계의 알파고 같은 기술이 등장할 개연성이 높다. 

감정이란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말하는데 기계가 인공적으로 감정을 익히게 된다면, 역시 희노애락 모두 느낄 수 있게 진화할 것이며 사람이 감정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처럼 기계 역시 인간을 닮아갈수록 감정적인 기계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인공감정이 이식되는 로봇

인공지능 기술이 사용되는 곳은 여러 분야겠지만 가장 현실성 있게 적용되는 분야는 역시 로봇 분야이다. 수십 년 전부터 사람들이 꿈꿔왔던 로봇이 사람들의 상상처럼 움직이기 위해선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인공감정’이 필요하다.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로봇의 전형은 로빈 윌리암스가 로봇으로 나오는 1999년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Bicentennial Man)’이라 할 수 있다. 가사를 담당하는 로봇(로빈 윌리엄스 분)이 로봇이라는 정체성에 회의를 품고 ‘자아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찾으며 인간으로 변해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Bicentennial Man)'


이런 평화로운 주제로 인공지능 로봇을 다룬 영화도 있지만, 많은 SF 영화에서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을 지배하려고 한다든지(터미네이터), 심지어는 인간을 멸망시키려 한다는(I. Robot) 위험한 상상들도 보인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길어야 100년 안에 사라질 것이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살아있을 동안 인공지능과 인공감정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발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될 확률보다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디스토피아가 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지금도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겨나는 게 아닌 것처럼…


* 이 글의 원문은 허브줌 (http://hub.zum.com/neoki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원글의 링크 : http://hub.zum.com/neokim/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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