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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무서운 삶 앞에서

살아야 할 이유, 단 한 가지

by 이제트

절벽 끝에 선 마음에도

손 내밀어 붙잡아 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하루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저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무서워서...

이제 끝내고 싶어요."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걸려온 전화.

작년 이맘때 자살시도 이후 상담을 진행했던 30대 여성의 목소리였다.

밤새 우울에 시달리다 꺼낸 첫마디는 '죽고 싶다'였다.

삶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말,

그 말은 너무 익숙하면서도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듯한 떨림이 목소리 너머로 전해졌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일단, 용기 내서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끼고 있었다.

가족에게는 짐이 되고,

세상 사람들은 다 잘 살아가는데

자신만 그렇지 못하다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더 깊어진 우울로 약물 치료도 받고 있지만 불안과 무력감은 여전했다.

가족에게는 미안해서,

친구에게는 부담이 될까 봐 망설이다 보니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다.


"그냥 이 고통을 끝내고 싶어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대화는 다시 그 말로 되돌아왔다.


그 순간, 전화기 너머로 작은 짖음이 들려왔다.

그녀는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온기가 스며 있었다.

그 속에 애착이 묻어났다.


"오늘 밥은 줬나요?" 나는 물었다.

밥을 주지 않았다고 하기에 말했다.

"그럼 지금, 잠시 전화 내려놓고 밥부터 줄까요?"


그 짧은 행동 하나가 삶을 붙잡는 끈이 되어주길 바랐다.


"혹시 당신이 삶을 놓아버린다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적어도 그 아이들과, 그리고 저는 당신이 살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밤을 꼬박 새운 탓에 지쳐 있었기에 이불을 덮고

눕도록 권했다.

포근한 감각에 집중하게 하며,

그 느낌을 나중에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


"죽고 싶은 이유 대신, 오늘 살아야 할 이유

한 가지만 찾아봐요. 그걸 찾았다면,

오늘 하루는 그 이유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그렇게 '하루 단위의 이유'를 약속했다.




한 시간쯤 이어진 통화 끝에, 죽고 싶다는 말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저 사실 죽고 싶지 않았어요. 잡아줘서 고마워요.

살아주길 바란다는 말에 눈물이 났어요.”


본인이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 같아서 슬펐고, 힘들어도 기댈 곳이 없다고 느꼈는데,

죽지 않게 잡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다시 전했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쩌면 오래도록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고비를 넘기면 잔잔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경험한 이 순간을 기억하고,

다음에 충동이 찾아올 때,

곧 지나갈 거라고 믿고,

혼자서 잘 이겨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전화를 끊을 때쯤 그녀가 말했다.

“오늘 저의 응급실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말에 나도 어디선가 본 한 구절을 전했다.

"작은 파도들 때문에 스스로가 바다임을 잊지 말기를"


그녀가 스스로의 바다를 기억하며,

내일도 살아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에게 오늘 내가 잠시라도 ‘기댈 곳’이었기를…


※ 본 글은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내담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일부 정보를 변경 및 각색하였습니다. 내담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음을 밝힙니다.


https://youtube.com/shorts/_YrbOFDwMwU?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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