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생일 감상평

고통의 바다 위에서 하릴없이 떠내려가는 인생에 대하여

by 마들렌

인생에는 고통이라는 상수가 있다. 아무리 부러워보이는 삶일지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에게 아픈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으며, 그 기억을 각자의 방법으로 관리하며 살아간다. 누구는 운동하면서, 누구는 여행을 다니면서, 누군가는 창작을 하고 누군가는 업적을 쌓으며 아픈 기억을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넣는다.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의 아픔을 내어맡긴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따라 그에게 상처를 준 상실감을 잊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그 상처가 너무 크다면?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면?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 거대한 아픔을 관리할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와 밀양의 연출부였던 이종언 감독의 데뷔작 ‘생일’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는 이 세상에서 누구라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잔잔히 위로하는 영화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건에 휘말린 가족 중 특히 순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아빠 정일과 엄마 순남은 그들의 아들 수호를, 딸 예솔은 오빠 수호를 세월호 사건 때 잃었다. 순남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는 상실감, 일 하느라 그 아들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관리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에 억류되어 세월호 사건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지 못한 정일이 귀국하자마자 이혼을 요구하며 가정의 회복을 스스로 거부한다. 초등학생 딸이 깨워야 일어날 만큼 그녀에게는 아침을 박찰 힘이 없다. 아들의 생전 예쁜 옷을 못입혀줬다는 자책감에 순남은 틈 나는대로 새 옷을 사서 수호의 방에 걸고, 옷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며 경탄을 내지른다. 밤이 찾아와 우울에 삼켜지면 그녀는 골목을 내다보며 친구와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언제라도 문이 벌컥 열리고 아들 수호가 나타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지만, 상상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잔인한 현실이 찾아오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그녀를 덮친다. 그러면 그녀는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부짖는다. 그리고 지칠 때까지 울다가 약물에 의지해 잠이 든다. 순남은 그렇게 아들의 죽음을 외면하려는 치열한 시도와 그 시도가 실패했을때 다가오는 아픔 속에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처럼, 결코 행복해져서는 안될 것 처럼 살아간다. 정일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수호의 이야기를 극도로 꺼린다. 죽은 수호의 존재를 떼어내고 살아있는 딸 예솔과 친밀감을 쌓아가려는 모습은 서둘러 그의 고통을 흘러가는 시간에 맡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 앞에서 정일 순남 부부의 선택은 도피였다.


그 도피는 정일 순남 부부를 파괴했을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준다. 딸 예솔은 슬픔에 잠긴 엄마를 보고 자라며 스스로 기쁨이라는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워간다. 다시 볼 수 없는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며 함께 우울에 빠질 때 엄마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예솔은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아이지만 너무 빠르게 어른의 감정을 배워간다. 바다에 트라우마가 생긴 예솔이 생선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딸을 집 밖으로 내쫓고 오빠는 지금 차가운 바다 밑에 있는데 반찬투정이나하느냐며 극도로 분노하는 순남, 그리고 곧바로 후회하고 예솔을 집으로 들이며 미안하다고 엉엉 우는 순남의 모습은 그런 도피가 가져오는 피폐를 보여준다.


영화는 정일의 에피소드를 통해 반전을 이룬다. 정일은 아들이 생전에 자신이 일하던 베트남으로 오고 싶어해 여권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되자 공항 출입국사무소에 들어가 베트남 출국 도장을 아들의 여권에 찍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직원에게 완강하게 거절당하자 정일은 드디어 아들의 죽음을 인정한다. 이미 죽은 사람이기에 아무 문제 없을테니 찍어달라는 그의 부탁은 간곡함을 넘어서 마침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정일의 용기가 아내 순남에게 위로가 되기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 생일은 실제로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열리는 행사로, 떠나버린 가족의 생일에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 그를 기억하고 서로 위로하는 자리다. 순남은 극 초반 수호의 생일파티를 열자는 권유에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렇게되면 정말 아들의 죽음을 인정해야하니까.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히 확인되는 것은 안산 길거리에서 세월호 관련 행사만 보여도 곧바로 눈길을 돌리는 순남에게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며 정일의 헌신, 자신의 울부짖음을 감내해준 이웃들, 함께 고통과 맞서싸우는 또다른 유가족들로 순남은 그 공포에 맞서싸울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순남은 결국 수호의 생일파티를 여는 것에 동의한다. 생일파티 동안 수호를 사랑했던 부모, 선생, 이웃 어른들, 친구들이 모여 수호를 기억하고 수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은 수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다. 담담한 목소리에 두들긴 마음이 거친 눈물을 내뱉었다. 순남은 울고 정일은 절규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마음 속에서, 골방에서 홀로 울음을 삼키던 그때와 달랐다. 수호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일 순남 부부와 함께 울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일과 순남의 마음이 위로를 얻었고 순남은 영화에서 처음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 생일은 정말 담백하게 세월호 피해자들을 애도하며 아주 조심스럽고 진실되게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한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이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인생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그때 어떻게 하겠는가. 영화 생일은 누구에게라도 누구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찾아올 수 있으니 우리가 함께 울자고 말한다. 너무 힘든 고통이지만 함께 짊어질테니 당신의 짐을 나에게 맡겨달라고, 당신이 아픔에 이성을 잃고 불편을 끼칠 수도 있지만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잠잠히 그 진실됨을 전하고 있다. 영화 생일은 섣불리 고통의 이유를 찾으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감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론, 결과론을 모두 제거했다. 너무나 담백하기에 극의 중반이 담담하다 못해 지루해질 때도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영화 생일을 보셨으면 좋겠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데 정치성향, 출생 지역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화 생일은 과거의 아픔을 포용함으로 사람의 회복이라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