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떡볶이, 아내의 떡볶이, 나의 떡볶이

#떡볶이 예찬

by 회사원제이

직장생활에서 얻은 휴가일수를 알뜰히 쓰느라 1년에 두세 번 해외여행을 떠난다. 죽기 전에 세상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무리가 있을 터. 우선순위를 두고 신중하게 목적지를 결정한다. 세상에 감동하고 배우며 여행을 완성해 나가지만, 빼놓을 수 없는 여정의 마지막은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생각나는 한국 음식이겠다. 그중에서도 내가 꼭 찾는 음식은 단연 떡볶이다.


북유럽을 포함한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거닐다 보면 대중 없이 문득문득 떡볶이가 떠오른다. 어디선가 매콤하고 달달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끝을 찌르는 듯하다. '은퇴하면 여기서 떡볶이 장사를 해볼까?'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장 실행에 옮길 거라는 듯 '쌀떡을 어떻게 수입하면 좋을까?' 같은 걱정부터 시작해본다. 당장 쫄깃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떡볶이 맛이 생각나 그런 것이다. 꿀꺽 침을 삼키고 가던 길을 걸어야겠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구호를 종종 듣는다. 비빔밥과 불고기 같은 메뉴가 그 선두를 달리고 있겠지? 그렇다면 국민간식, 우리의 떡볶이는 어떨까? 길거리 음식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떡볶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길거리 음식이 보편적인 동남아에는 전파가 더 쉬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별미라는 특징을 내세워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시장표 떡볶이




어린 시절부터 떡볶이를 좋아해서 자주 먹었다. 그 시절 시장에서 먹던 밀가루 떡볶이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철판에서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 떡볶이를 주걱으로 휘휘 젓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기억. 초록색 접시 한 가득 떡볶이를 두 손에 받아 들고 세상 다 가진양 좋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으로 백화점 지하에서 떡볶이를 먹었던 날엔? 떡볶이의 비싼 가격에 깜짝 놀라 떡볶이의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즉석 떡볶이가 등장했을 때는 또 어떠한가. 눈 앞에서 끓고 있는 빠알간 국물 속에 담긴 떡볶이는 또 어떤 다른 맛을 낼까... 기대하며 젓가락을 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순간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독립한 이후에는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요리를 해본 적 없던 내가 호기롭게 시도했던 첫 번째 요리(?)였기에 결국 부족한 양념 맛을 떡의 품질로 메웠던 기억이 난다. 떡집에서 막 뽑은 떡볶이 떡을 아침에 사 와서 바로 만들어 먹으면 황금비율 양념이 아니라도 떡의 쫄깃한 맛이 느껴지니까. 내가 만들어 놓고도 어찌나 맛있는지, 주말마다 직접 만들어 먹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혼자 사는 아들 집에 가끔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그때마다 아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 주고 싶다며 무얼 먹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떡볶이만 해주셔도 좋아요."


시간이 흐르며 내가 떡볶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인지하신 어머니는 결국 떡볶이를 만드는데 집중하셨다. 역시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최고였다.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새로웠다. 누가봐도 집 떡볶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많은 재료들이 떡볶이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영양보충을 해주고 싶으신 마음에 고기를 구워 주고 싶으신데, 대신 떡볶이를 만들게 되었으니 고민을 하셨나 보다. 영양보충을 해주겠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떡볶이에 담겼다고 할까? 어머니가 해주시는 떡볶이는 들어가는 재료가 화려할 정도였다.


떡집에서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떡을 사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추장과 물엿, 어묵 등의 기본 재료도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하시는 것은 물론이다. 거기에 고기, 버섯을 넣는다. 그 밖에도 여러 채소와 과일 등등 많은 것들이 들어가는데,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어머니께서는 프라이팬 한 가득 결실 맺은 떡볶이를 내 앞에 차려주셨다. 떡볶이보다 다른 재료의 양이 더 많을 정도였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비율의 재료가 들어간 떡볶이였는데도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음에도 떡볶이의 맛을 해치지 않고 조화로운 맛을 났다는 것은 어머니의 요리 솜씨 때문이겠지? 아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겨서였기 때문일까?


그 날은 한 끼 식사를 떡볶이로 대신한 이후에도 하루 종일 떡볶이를 먹었다. 엄마의 사랑만큼 양도 듬뿍이었으니까. 그 날만큼은 나에게 다른 음식은 필요가 없었다. 엄마표 떡볶이로 충분했다.


어머니의 스페셜 떡볶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사라졌다. 그렇게 정성 들여 특별하게 만든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진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을 보내고 작년에 아내를 만났다. 남자 어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도 자주 떡볶이를 먹는다. 냉장고에는 떡볶이 떡과 어묵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 비록 떡집에서 뽑아온 떡이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품질이 좋아진 듯하다. 가끔은 마트 한편에 마련된 떡집에서 떡볶이 떡을 사 올 때가 있다. 그 날은 무조건 쫄깃한 떡을 그 자리에서 먹곤 한다.


아내의 떡볶이는 마트에서 파는 떡볶이와 어묵, 고추장 만을 사용하지만 이게 또 맛있다. 평범한 재료만 사용하지만 떡볶이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다! 비슷한 재료와 비슷한 레시피이지만 요리할 때마다 다른 맛이 나오는 것이 떡볶이의 특징인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에게 최고인 떡볶이 요리는 아내표 떡볶이다. (진짜다!)


우리는 가끔 떡볶이 가게에서도 데이트를 즐기곤 한다. 최근 이사 온 동네의 떡볶이집을 모두 하나씩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타깝게도 어머니와 아내가 해 준 떡볶이보다 맛있는 집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내가 해주는 떡볶이가 비교할 수 없이 좋다. 결국 오늘도 아내에게 말해본다.

"우리 떡볶이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