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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플린 Dec 14. 2021

규제로 인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른 것은 아닐까?

2021.04.06.

이 글은 2021.04.06.에 작성하였습니다.


켄 피셔의 "주식시장의 17가지 미신"에는 양파 투기 금지와 그 결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p. 81
"1958년 양파 경작자들은 투기자들이 양파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양파 가격을 떨어뜨린다고 당시 미시간주 하원 의원이었던 제럴드 포드를 설득했다. 그는 양파 투기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켰다. (지금까지도 이 법이 유지되고 있다.)"
p. 82
"2000년 부터 2011년 까지 원유는 표준편차가 33.2%였지만, 양파는 표준편차가 무려 205.9%였다."
"누군가 투기를 금지하여 시장의 병폐를 치유해야 한다고 말하면 이 사례를 떠올리기 바란다. 투기를 금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변동성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변동성이 증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투명성과 가격 발견 기능까지 약화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의 주택 규제 정책이 떠올랐습니다. 시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주택 규제가 되려 '서울 아파트'를 비롯한 '양질의 주택' 가격을 더욱 끌어올렸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대한민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낮기 때문에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주택 시장은 양극화 장세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를 비롯한 양질의 주택 위주로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2017년 6억 초반이었지만, 현재는 9억 중반을 넘겼습니다. 4년 간 약 3.5억이 올랐고, 이는 가계 가처분소득의 7년치에 해당합니다.)


켄 피셔는 어떠한 관점에서 투기 금지가 가격 변동성을 높였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아래의 부분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p. 81
"선물 거래자들(투기자들)은 자본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유동성을 높여준다. 또한 투명성과 가격 발견 속도도 높여주어 순기능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유동성 증가가 주는 혜택을 간과하지만, 단지 거래량이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변동성이 감소할 수 있다."

즉 '투기 세력으로 인한 거래량 증가'가 가격 변동성 저하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저의 경험을 비추어 보아도 이 내용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년 간 주택 거래량이 대규모로 상승하는 등, 거래량 자체만 보면 꽤 많은 거래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별 거래를 하나씩 살펴 보면 그 질적인 측면에서 '투기 거래가 줄어들고, 실수요 성향의 거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느낍니다.


현 정부의 주택 규제는 주택의 취득, 보유, 양도, 증여의 모든 과정에서 투기성 거래에 큰 불이익을 줍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수요라 할 수 있는 1세대 1주택의 거래가 늘었고, 실제로 현 정부의 주택 규제 이후 다주택자는 감소했습니다.

지난 4년의 기간 동안 평균 거래량은 증가했지만 투기성 거래량은 줄어들었습니다. 실제 거래를 이루는 주체는 대부분 실수요에 가까웠습니다. 세를 끼고 집을 사든 대출을 잔뜩 끼고 집을 사든, 입주 시기의 차이일 뿐 1세대 1주택은 기본적으로 실수요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수요는 어지간해서 집을 잘 팔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값이 오를 때 높은 가격을 부담하며 삽니다. 신고가를 직접 찍거나, 신고가 근처에서 삽니다. 실수요는 자본차익 보다 거주에 우선을 두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대체로 지불하는 편입니다. 즉 '실수요가 많으면 Positive Feedback 효과처럼 가격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가격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변동성이 커지죠.

하지만 투기 수요는 가격이 단기 급등하면 매수를 하지 않습니다. 우선 투기 수요는 해당 주택에 거주할 용의가 높지 않습니다. 애초에 거주할 생각 조차 없는 사람이 더 많구요. 그리고 가장 큰 목적이 자본차익이기 때문에 안전마진이 확보되지 않으면, 즉 가격이 단기 급등하면 쉽사리 매수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투기 수요는 신고가를 찍는 경우가 많지 않고, 신고가를 찍더라도 직전 신고가와 그리 큰 차이를 두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투기 수요는 Positive Feedback을 그리 강하게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묶어서 봅시다.

실수요는 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주택을 매수합니다. 가격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동성이 늘어납니다.

반대로 투기수요는 어지간해서는 신고가를 찍지 않습니다. 가격의 보합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변동성이 줄어들거나, 가격이 조금 낮아지는 방향으로 변동성이 늘어납니다.

이 둘이 묶이면 '적절한 변동성'이 달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여기서 투기수요를 차단하면 어떻게 될까요?

켄 피셔가 인용한 양파 가격 변동성처럼 되지 않을까요?

투기수요를 규제한 결과는 모두가 아시는 것과 같이 '상품성 높은 아파트에 실수요가 대규모로 참여하여, 신고가가 신고가를 부르는 현상'을 불러 왔습니다.

패닉 바잉 장세이던 2019년 말 2020년 초는 살얼음판과 같은 시기였습니다. 시장이 이성을 잃고 상방으로 튀어오르는 그 때의 분위기는 뒷골이 서늘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도 Covid-19로 경제를 강하게 한대 때린 뒤에야 겨우 쉬어가는 모양새인데, 돌이켜 보면 '실수요자로 인한 가격 상승 장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양파 가격은 높은 변동성을 가진 만큼, 가격이 크게 오른 뒤 크게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택 가격, 특히 '서울 아파트' 가격도 크게 내릴까요?

이 부분에서는 양파와 주택의 차이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파와 주택 모두 '공급' 시점에서는 공급량에 제한이 있고 단기적으로 공급량을 늘릴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양파는 식품이라는 일종의 '소비재'이고, 주택은 30년, 40년, 요즘에는 50년도 거뜬히 사용하는 '내구재'입니다.


주택은

- 실수요로 인해 기본적으로 구축 매도 물량이 나올 확률이 낮으며,

- 세법 변화와 중위가격 증가로 인해 10년 이상 거주해야 매도 물량이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며,

- LTV, DSR, 신용대출 규제 등 글로벌 최고 수준의 레버리지 제한을 통해 외부 충격에 강건한 구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Covid-19에 꿈쩍도 않는 가격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양파와는 달리, 주택은 한 번 거래하면 오랫 동안 사용하는 특성으로 인해, 가격의 하방 변동성이 높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번 오른 가격은 쉽사리 내리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규제에는 여러가지 가정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의 주택 규제는 '다주택자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다.'는 대 전제를 통해 일관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이 틀린 것은 아닐까요?

켄 피셔의 책을 보더라도, 시장에 참여하는 저의 경험을 통해 보더라도, 다주택자 투기 수요를 주택 가격 상승 원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주체가 다주택자이기도 하고, 시장에 매매 물량을 공급하는 역할도 다주택자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결과'가 이 가정의 옳고 그름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 간 다주택자를 규제한 '결과'가 현재의 주택 가격입니다.

이후 주택 규제에서는 '다주택자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는 가정을 수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책을 계속해서 '실수요장세'로 만든다면, 회복하는 경기와 함께 주택 가격도 또다시 움직일 것만 같습니다.


주택 가격을 잡으려면 시장의 관점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이 발표되던 시기 마다 시장주의자들은 지금과 같은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어 왔습니다.


- 주택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높아질 것이다.

- 실수요 장세로 만들면 임대 가격이 높아질 것이다.

- 청약 추첨을 없애면 매매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 대출 규제를 강하게 하면 부의 세습이 이루어질 것이다.

- 장기보유 인센티브를 늘리면 매도자 우위 시장이 펼쳐질 것이다.


시장 관점에서의 정책 부작용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일관적으로 시장이 우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 왔습니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그 길은 종종 시장이 우려하는 방향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도덕적인 올바름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집값이 더 오르는 것은 누구에게도 행복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장의 목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정부도 시장의 관점을 고려하며 정책을 펼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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