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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Sep 12. 2018

아픈데

- 어쩌란 말이야

아픈데

- 어쩌란 말이야


                                               시. 갈대의 철학[蒹葭]


아픈데

안 아프다고 하면

날보고 어쩌란 말이야


눈물이 금세 왈칵 쏟아질 것 같은데

뒤돌아 서서 훔친 눈물도 없으니 

마음이 서서히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안 아프다고 하면

내 마음이 편할까 봐서


무르익어 가는

푸르른 청춘의 텃밭인 이 가을에
만삭 된 원숙함에
점점 내 마음도 가늘어지고

가끔은 네게 쓰다만
때 묻어 빛난 몽당연필에 또 쓰고 지워도
그리운 한 점 건져볼까 하여
다시 못 올 것 같은 이 가을에

네가 또다시 서 있겠다고
새벽이슬 맞을 때까지
서성임을 말해두렴인지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가을이 지나갈까 봐서

그래서 그렇게 못다 한 사랑에
서러움의 보상이라서 


그토록 그렇게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그 흔한 눈물도 

흘러가는 바람에 맡겨

젖셔왔어야 만 하였는지를


그렇게 감추고 아껴둔

네 말 한마디를 건네어

지금의 내 가슴에 비수를 꽂고

더 잔혹스럽게

더 표독스러게

몸서리치며 떠났어야 만 하였는지를


너  떠나고 난 후에도 난

지금의 그 다리에서

먼하늘 올려다보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낙이 된 것처럼


지나온 그날에 가끔은

가을 하늘 들녘을 들쳐보면서 
오랜 인고의 세월을
기다리게 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이 가을의 만추가 오기 전에 되묻고 싶다


먼발치서 바라볼라 치면 

아직도 눈물이 흐르다 마는 것이

그대 앞에 메마른 내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지기만을 기다리는 게 
네 사랑의 전부였는지를 묻고 싶었어


오늘도
그 자리에 서성이고

배회해야 만

네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었는지를


지금도 너 떠난 후 빈자리가

이토록 외진 곳이었는지를


깊게 파 놓은 우물가에

 수심 가득하게 고인
물 웅덩이 마냥

얕은 우물인 것을 알았을 때
뒤늦게 알아 버렸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는 현실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일찌감치 강 하나를 사이에 두었었지


밝아오는 밤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칠흑 같은 밤을 기다려야
해가 솟구치는 마음을

우리는 서로를 진정 몰랐었던 거야


맨드라미
알밤이 떨어졌구나
금대리 가을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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