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잡아야 이어지는 관계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편이다. 못하는 편도 아니라 못 한다. 작은 범주의 일들은 같이 하는 편인데, 예를 들면 음악 들으면서 프로그래밍하기 정도, 조금 범주가 넓어지면 아예 일을 못하는 편이다. ‘넓은 범주라면 무엇을 얘기하는 건데?’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고 생각되어 간단히 얘기하면, 알바와 학교를 병행하기라든가, 두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사실 알바와 학교를 병행하기나 학교 다니면서 스터디 3개 하기 정도는 해봤는데, 매 번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이 정도면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거 같은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약간의 상황별 차이는 존재한다. 알바도 만약에 편의점이나 음식점 아르바이트였다면 못했을 거다. 학원 아르바이트였기에 그나마 했던 것이다. 스터디도 대부분 아는 내용들을 주제로 했기에 3개를 운영할 수 있었다. 만약에 아예 모르는 내용들이었다면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별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상황별 차이가 존재해도 아예 못하는 것이 있다. 인간관계와 공부다.
나는 누가 봐도 소심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없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적은 전혀 없다. 수치로 표현하면 평균, 어쩌면 평균 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관계 유지법을 잊은 뒤로는 새로운 관계를 맺은 일이 없던 거 같다. 내가 벽을 치는 건지, 상대가 벽을 치는 건지 구분이 안될 지경에 이른 거 같다. 판단력이 조금 많이 흐려졌다.
공부를 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우면, 내가 원하는 그 이상향에 도달하는 기분, 내가 성장한 기분이라 좋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향은 너무나도 높다. 저 이상향에 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제는 내가 저 이상향에 단숨에 도달할 천재가 아니란 거다. 노력하면 갈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천재들과 나의 수준차이는 꽤나 심각하게 많이 벌어져있다. 그렇기에 천재들이 노력하는 그 이상으로, 단순히 넘기는 게 다가 아닌, 몇 배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한다. 근처의 수많은 인연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가 연락을 오래 유지한만큼 나를 기다려주는 법인데, 그만큼 연락하지도 않았고, 그만큼 연락할 시간도 없다.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나를 기다려달라고,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하면 그들은 이해해 준다. 그만큼 오래 지냈고, 그만큼 유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충분한 이해와 유대가 없기에 나는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도 그랬을 거고, 이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그동안에는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 없다고 느꼈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더 오래 끈끈하게 알고 지내는 게 더 좋다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이 대목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연락을 유지하고 싶지만, 연락하면 분명히 꿈을 위한 공부에 소홀해질 것이다. ‘둘 다 하면 되잖아?’라는 단순한 답은 이미 나왔지만, 앞에서 계속 말했듯이 난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한다. 둘 다 하려다가 둘 다 망치는 꼴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선택이 문제다.
사실 본심으로는 잠시 쉬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동안에는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조금 쉬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본심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나와 관계 유지를 하고 싶어 할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상대가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 상대랑 대화할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빨리 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나와 그 상대와 성향과 관심사와 생활이 정말 비슷했다. 성별만 다른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 스스로 내가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와 대화하는 상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연락을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도, 그 사람의 기분을 해칠까 봐, 시간을 뺏을까 봐 연락을 유지하기 힘들다.
양자택일은 언제나 어렵다. 선택을 잘 못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만큼은 어느 한쪽을 양보하기가 힘들 정도다. 내가 두 가지를 전부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게 아니라서 조금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