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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곤 Oct 25. 2024

열일곱 번째 생각 정리

만성적인 슬픔

 요즘은 안좋은 기억이 빨리 사그러지라는 의미인지 좋은 일들의 연속이다. 세상은 내가 빠르게 안좋은 기억을 잊으라고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를 조금 더 간직하려고 한다. 빠르게 잊을 수 있다해도 그 슬픔의 텁텁한 뒷맛을 조금 더 느껴보려고 한다. 그래야 다음 슬픔을 쉽게 넘길 수 있을것 같다.


 삶에 항상 기쁜일만 있는건 아니다. 그렇다고 항상 슬픈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나의 삶에는 슬픔이 깔려있을까. 그것이 고민이다. 이제야 슬픔에서 벗어나나 싶을때 마다 도로 미끄러져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나를 보면 스스로도 안타깝고 그만 고생했으면도 한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으니말이다.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비긴어게인의 댄이 했던 대사다. 나의 친구도 내게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만성적인 슬픔이 느껴진다고 했다. 20년을 넘게 알고 지냈지만 나의 가정 환경이나 사건들 중에 그런 일이 없지 않았나 하는 이유에서 출처를 알 수 없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애착형성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이 되지만 그게 20년을 좌우할 일인가, 정말로 그렇다면 세상은 너무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기억들을 되돌아보면 기뻤던 기억보다는 약간은 음울하고 슬펐던 기억들이 대다수다. 남들과는 어딘가 다른 나를 보며 평범함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이 많다. 채워지지 못하는 물욕, 애정욕 등 결핍이 주를 이루었다. 결핍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결핍이라는 구멍이 너무나도 많았고, 늘 그 구멍들을 채우고자 아둥바둥 지내왔다.


 하지만 그 구멍들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고, 그 구멍들로 인해 만성적인 슬픔이 생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채워도 채워도 계속해서 새어나가는 밑 빠진 독 처럼 나의 마음에 들어오는 행복들은 모두 쉽게 흘러내려가버린다.




 나의 마음의 구멍들을 막아주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모든 구멍들을 다 막아주진 못하지만 어느정도 막히는 것에 나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나 스스로도 나머지 구멍들을 막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막혀있던 구멍들이 풀리고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 나머지 구멍들에서 손을 떼며 다시 행복들을 놓쳐버리곤 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행복들은 구멍을 더 크게 만들고 나는 다시 행복이란 무엇이었는지 남은 행복들을 주으며 상상을 할 뿐이다.


 상상은 또다른 상상을 낳고, 또다른 상상도 또 다른 상상을 낳게 된다. 그렇게 몇 차례 거듭된 상상은 어느 순간부터 현실성이 없어지고 행복에 대한 나의 기준치는 너무나도 높아진다. 하늘까지 떠올랐던 나의 행복에 대한 기준은 현실을 마주하며 추락하게 되고 다시 행복이란 무엇인지 떠올리는 하루를 보낸다.


 나의 만성적인 슬픔의 출처는 결국엔 나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그만 보내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이 고통을 조금은 인내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고통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니 자주 접하면서 둔해질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내가 고통에 민감해서일지도 모른다. 바늘에 찔렸을 때,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되는데 나는 그 이상을 생각한다. 바늘에 왜 찔렸는지, 바늘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바늘과 나는 왜 만났는지를 생각하며 바늘에 찔린 그 이상을 아파한다. 찔리고, 피가 약간 나고, 피를 닦고 넘어가도 될 부분이지만 나는 그 이상을 생각하며 다른 의미로 엄살을 부린다. 고통스러운게 싫어서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넘지 않는 나의 행동이 문제다.


 문제상황을 알고 해결법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나는 아직도 바늘과 나는 왜 만났는지를 생각하고 있다. 바늘과 내가 만난건 그렇다치자 라고 생각할 때 쯤엔 내가 잘 피했다면 찔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찔리는건 필연이었을거야 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 쯤엔 왜 필연임을 이제야 알았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결국엔 회피할 수 있었을텐데 왜 못피했는지 과거의 나를 닦달하고 있는 셈이다.


 회피. 결국엔 회피가 문제다. 나도 나름 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고 맞을 생각은 저 편에 있다. 맞아도 별로 안아플수도 있지만 잠시 방심할 때 들어온 그 기억들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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