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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곤 Sep 20. 2024

열 번째 생각정리

여행

 기나긴 일본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여행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돈도 많이 쓰게 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걱정이 앞섰다. ‘지금 이렇게 놀기엔 내 실력은 너무나도 바닥인데 내가 정말 여행을 가도 괜찮은 걸까?’, ‘내가 없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내 일을 하면서 나를 욕하는 건 아닐까?’, ‘여행을 갔다 오면 연속적인 나의 생활 흐름이 깨지는 게 아닐까?’, ‘여행에서 돌아오면 더 이상 공부나 일하고 싶어지지 않을 거 같은데…’ 하는 걱정들이 내 머릿속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까지도 이런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돌아오고 나서 여행 갔던 이야기들을 하고 나니 이런 생각들이 사라졌다.


 여행을 다니는 도중에는 내가 즐겁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런 데에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일본 여행지를 돌아다닐 때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원래 하던 것들을 하는 게 더 생산적이고 내 삶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기 전날 앨범을 정리하며 회고를 하면서 돌아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고 느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우울해졌다. 나는 여행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여행이 즐겁다고 느끼고 있었다.



 돌아오고 나서 짐을 정리하고 이야기들을 풀고 기념품들을 가족들에게 주고 나니 여행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다시 느꼈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위해 여행을 갔다 오는구나, 여행의 과정도 즐겁지만 그 과정을 회고하는 과정이 더 즐겁구나를 새롭게 알게 됐다. 교토 역이 얼마나 큰 지, 교토의 주택들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 교토에서는 건물들의 색에도 규제를 두고 있어서 세븐 일레븐 마저 검은색인 것,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에서 내려다보는 오사카의 모습, 도톤보리의 거리 등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단순히 즐거움, 쾌락을 위해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견문을 넓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가는 거란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동안 생각해 보면 내가 규칙적으로 생활한다고 했던 모든 것이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매일 10시간씩 앉아있어도 그 시간 동안 만들어 낸 유의미한 산출물이 없으면 그 시간은 놀고 있는 거랑 같다. 내가 그랬다. 매일 앉아있고, 매일 무언가를 하는 것에 집착했지만 유의미한 산출물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10시간씩 앉아는 있지만 산출물은 3시간을 온전히 집중하면 나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일주일 중 4일을 놀고 3일을 매일 한 시간씩 집중하는 게 오히려 나을 정도인 것이다. 시간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나를 고문하는 것에 불과했다. 적군을 고문하면 정보라도 나오지만, 스스로를 고문하면 나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끝없는 고통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누가 나를 고문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찾아 헤맸는데 그게 나였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고문의 시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를 조금 놓아줘야 한다. 나는 나다. 지금까지 나를 내가 아닌 것처럼 ‘너’로 불러왔던 이유는 나를 나라고 생각 안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것은 내가 정말 원하는 내가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남들이 원하는 나다. 내가 진짜 원하는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나를 조금 놓아주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해줘야 한다. 나조차도 나를 혐오하는데 누가 나를 좋아해 줄까라는 질문을 자기혐오로 사용했는데, 이 질문은 자기혐오를 하라고 만든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 자체가 해답이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내 행동들은 광기였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모습이 아닌 나의 모습을 채우고 있었다. 자기 중요감은 삶의 동력이자 인간의 핵심욕구다. 자기 중요감을 상실한 나는 공상이라는 광기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나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타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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