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선을 지키다 보면 선을 넘고 싶을 때가 있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상대가 허락하지 않은 영역에 침범한다는 점에서 선을 넘는 사람의 의도는 선을 그은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나도 그걸 잘 알면서도 선을 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사람이 선을 긋는다고 해도, 모두에게 같은 선을 긋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에게는 좀 더 넓게, 저 사람에게는 좀 더 좁게, 그리고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는 밀착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좁게 긋곤 한다. 사람은 모두가 평등한 존재라고 하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평등한 존재가 아닐 수 있다. 위험에 처한 두 사람을 구할 때, 자신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취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구하는 것에서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좀 더 친하다고 같은 편든다는 말도 나올 수 있지만, 이는 사람의 본능적인 부분이다. 생판 남보다는 좀 더 많이 본 사람과 유대감을 더 많이 가지게 되니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과 더 근접해 있는 사람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은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과 특별함을 공유하는 사이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제한된 선은 나에 비해 반경이 굉장히 좁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선을 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가 호감을 느낀 사람과 좀 더 친밀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람의 특별함에 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나에 대한 선은 더 넓어진다. 선의 반경을 최대한 좁혀도 안될 마당에 선이 더 넓어지게 되면 그 사람의 특별함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선을 최대한 좁히려고 들지만 선이 좁아지지 않게 되면 나는 단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더 이상 선을 좁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을 넘어버려 관계를 망치긴 싫은 상황이 되면 나는 빠르게 포기를 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정말 애꿎게도 내가 포기를 하려고 할 때마다 상대는 선을 좁혀준다. 그러면 나는 다시 선을 좁히고자 노력하게 된다.
남들은 쉽게 그 영역을 왔다 갔다 할 동안에 나는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 선을 좁히고 있음을 인지하면 상당히 괴롭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다가,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함을 인지하고 단념하기를 마음먹는다. 선이 좁혀져서 내가 그 사람과 밀착된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내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또 저번처럼 하나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목적을 상실한 채 관계를 망가뜨릴까 무섭다. 어차피 그런 걸로 걱정할 거면 괴로워하지라도 말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나도 편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걸까. 나를 위해 선을 열어주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선을 선뜻 열어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생각을 그만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