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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곤 Oct 11. 2024

열다섯 번째 생각정리

나의 애착

 인간관계론에 대해서 들었고 애착 형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면, 유년기 애착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것이다. 유년기에 형성된 애착, 성격이 성인까지 이어지고 성인이 되어서 이 애착 유형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애착은 일반적으로 생후 1년 정도에 부모와의 신체 접촉과 유대 관계로 형성이 된다. 이렇게 형성된 애착은 훗날 자신과 타인에게 주위 환경에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반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하게 되는 애착 손상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에 대해 신뢰할 수 없게 되고, 버림받을 거란 생각을 갖게 된다. 나의 경우엔, 제대로 형성이 안 된 상황이다.
 
 이미 기억은 사라졌지만, 나는 생후 3개월에 횡격막에 큰 이상이 생겨 숨을 쉬지 못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큰 수술을 해야 했고, 자연스레 나의 영아기는 부모님의 품이 아닌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는 나의 가슴에 길고 하얀 선으로 그 시간이 남아있다. 이후에는 또 문제가 생겨 4살 정도에 대수술을 받았다. 가슴에 큰 쇠를 넣는 수술이었는데, 나의 기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그저 티비만 바라보는 기억이 나의 유년기의 기억이다. 1년이 지나고서는 유치원에 등원을 했는데, 이 시절의 기억은 즐거운 기억보다는 부모님과 떨어져야 해서 떼를 쓰던 기억과, 그런 나를 달래주는 동갑내기 친구들과 유대관계를 쌓은 기억 정도가 다이다. 이후 다시 가슴에 들어가 있는 큰 쇠를 빼내는 수술을 했고, 나의 몸에는 하얀 자국들이 즐비했다.
 
 내가 애착을 형성할 시기에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모두가 부모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즈음에 나는 병원 티비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부모님과 어딜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이는 여전히 그렇다. 별로 대화하고 싶지도 않다. 어쩌다 한 번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게 아니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굉장히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내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나와 누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집에 돌아가자고만 했다. 옆에서 누나가 뭐라 하든,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상황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 공간이 싫었던 것도 아니고 그곳의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고 그저 그 상황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다. 아니면 나와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아버지를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걸까.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뒤로 남겨둔 채 홀로 집에 가려는 내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나를 이기지 못하고 날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로도 가족과의 애착이 형성될 일이 없었다. 가족끼리 다 같이 어딜 놀러 간 적도 없었고, 집 안에서는 가족들 간의 언쟁, 집 밖에서는 친척들과의 분쟁으로 늘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부모님께서 뭔가를 잘못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부모님도 처음이었을 거고, 당황스러웠을 거다. 부모님은 그 상황에서 그저 최선을 다 한 것일 뿐이고 운이 좋지 않게 거기에 내가 걸려든 것뿐이다. 누나들은 늘 내 자존심을 깎는 이야기만 했고, 나는 거기에 별 다른 말 없이 그저 수긍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 이 나이까지 끊임없이 생각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집을 나가서 혼자 살면 모든 게 행복해지겠지'이다. 가족들이 내게 막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날 못되게 군 것도 아니지만 그런 막연한 믿음이 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이 모든 것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애착 때문일 것이라고도 말이다.
 



 최근에 애착 검사를 다시 해보았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회피 점수는 조금 줄었지만, 불안점수는 여전히 높다. 모두가 이렇게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 친구에게 넌지시 한 번 해보라고 권해보았는데 친구는 1점대가 나왔다. 굉장히 정신적으로 건강한 친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내가 상당히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친구는 내가 신비로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속내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이 역시도 내가 속내를 쉽게 이야기하지 않으니 말이다. 늘 웃으면서 좋다고만 하고, 화도 전혀 내지 않고, 늘 기분 상하지 않게 쿠션어를 잔뜩 깔고 돌려 이야기한다. 이전에 만난 아이도 내 속내를 모르겠다고 했고, 나를 마음에 들어 했던 그 사람도 거절에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진심을 드러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럿 들었다. 하지만 두렵다. 내 속내를 듣고 당황하고 슬퍼할 상대의 얼굴을 생각하니 불쾌해진다. 그러니 그냥 항상 웃는 얼굴로 지낸다. 웃는 얼굴로 상대도 같이 웃게 하는 말들을 하며 그렇게 얼버무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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