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깊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얕게 때로는 깊게 사람을 만나게 된다. 빠르고 얕게 만나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니 얕고 빠르게 만나게 된다. 느리고 깊게 만나는 것은 잦은 일은 아니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래 알게 된 인연이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느리고 얕게 만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비즈니스 관계일 수도 있고, 직장이나 어떤 단체에서 알게 된 경우 느리고 얕게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빠르고 깊게는 이상하다. 사람에 대해 빠른 속도로 깊게 알 수 있을까. 빠르고 깊게 만난다는 거는 조금은 이상한 말이다.
아마 대부분 4가지 유형에 대해 모두 만나봤을 것이다. 하지만 빠르고 깊게의 유형은 많이 못 만났을 것이다. 깊은 관계라는 것은 쉽게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관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나의 만남은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하고. 이번 만남은 그 빠르고 깊게 가 성립된 게 아닐까 하고.
단기간에 친해지고 단기간에 깊은 관계로 갔으니 나는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빠르고 깊은 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그저 깊다고 착각한 것뿐이다. 이 사람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거뿐이다. 하지만 이 착각은 타격이 크다.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기에 나는 가드를 내리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들어온 타격은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나는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다. 나는 안되지만 타인은 된다. 이걸 배려심이라고 부를 수 도 있지만 나는 배려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이러는 건 아니다. 확고한 가치관과 기준이 없기에 누군가에게 그 기준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내게 확고한 기준이라는 것은 없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내 확고하게 의견을 밝히는 나를 보는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두려워져 그만뒀다. 그 이후부터는 물 흐르듯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가는 게 편했고 대부분 자기의 의견에 동조해 주면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나만의 잣대를, 기준을, 가치관을 들이대면 반감을 보였기에 그러지 않았다. 자아가 없다는 것은 내게 있어 너무나도 편했다.
편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의 내면 속 자아 없애기의 동기는 그저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누군가의 호감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해 주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상 공감해 주고, 동의해 주고, 격려해주기만 해도 그 사람은 호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반감은 가지지 않게 됐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내게 반감이 없다는 건 굉장히 좋은 점이다. 다들 나를 좋게 봐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내 자아를 없애왔다. 모두가 내게 호감을 느꼈으면, 최소한 반감은 안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의 확고한 가치관이 사라지고 나니 나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나의 그런 점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도 생겼다. 나도 처음에는 잘 맞았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보이지 않는 것뿐 계속 도처에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유는 무조건 있다. 이유는 무조건 있지만, 두루뭉술한 이유가 아닌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구체적인 이유가 없었다. 두루뭉술한 이유일 뿐. 그 두루뭉술한 이유마저도 나 스스로를 속인 이유였다. 나도 내가 왜 이 사람이 좋은지 모르고 만나고 있었다. 나의 가치관은 두루뭉술하니 말이다.
나의 낮은 자존감도 한몫했다. 이 사람이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하게 낮은 자존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낮은 자존감은 이미 관계가 평등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상대가 평등하게 하자고 해도 내가 자처해서 그 밑으로 들어가게 되어버린다. 이런 관계는 비극으로 갈 뿐이다. 예정된 비극이었다. 계속해서 밑으로 들어가는 나도 어느 순간부터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고, 언젠가는 모든 게 해결되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만나고 있었다.
결국 비극이 다가왔다.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사람은 나를 대체로 버티기 어려워한다. 가치관이 없기에 맞출 수가 없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현재는 내가 모든 부분을 허용해 주지만 결국에는 내가 어디까지 허용해 줄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두렵다. 지금까지는 모든 걸 맞춰줬지만 나중에 안 맞춰주는 부분이 나오면... 하는 불안감. 지금까지 내가 포용해 줬던 게 행복했던 건데 내가 더 이상 포용해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의 두려움. 상대는 그 불안감과 두려움이 무의식에 깔리게 된다. 하지만 이미 나는 자아가 없는 사람이니 무언가를 더 해줄 수가 없다. 여기서부터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나와 빠르고 "깊은" 관계에 도달했다면 나의 포용의 한계에 대해 어림짐작을 하고 스스로를 맞췄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모든 걸 맞춰줬으니 이제는 상대가 내게 맞춰줄 것이다. 하지만 깊은 관계에는 결국 도달하지 못했기에 비극이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저 착각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상대도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 하는 착각의 연속.
그렇다면 느리고 깊은 관계에라도 도달했어야 하지만 이미 착각 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해 다 알았다고 생각하기에 끝맺음을 지어버린다. 그리고 그 끝맺음 과정에서 상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빠르고 깊은 관계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면서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의 모습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끝맺음은 지어져 버렸고, 예상외의 상대의 모습을 본 나는 실망할 뿐이다.
빠르고 깊은 관계는 허상이고 가치관은 필수적인 존재다. 가치관이 없는 사람은 그저 군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 그 사람이 혼자 있음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저 허울에 불과한 존재다. 그런 사람이 빠르고 깊은 관계까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재앙일 뿐이다. 더 깊은 관계는 시간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많이 지쳤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나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