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곤 Nov 22. 2024

스무 번째 생각정리

공감하고 사랑하는 것

 공감 능력.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을 말한다. 단어의 정의에 자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에 공감이라는 말은 대체로 타인의 감정에 대해 적용이 된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의 감정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나이고 감정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나 스스로를 ‘공감’한다는 것일까. 그게 가능한 이유는 공감의 대상의 현재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이기 때문이다.


꿈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것, 나의 미래를 꿈꾸는 것, 나의 이상향을 그리는 것. 이들은 모두 나의 미래를 공감하기에 나올 수 있는 것들이다. 미래의 내가 그것들을 이뤘을 때 느낄 감정들을 상상하며 느끼는 것, 그것이 나 스스로에 대한 공감이다.


나는 그런 공감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미래를 꿈꿀 때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식으로 나를 다그친다. 성공한 나의 모습을 그리다가도 금방 그만둬버린다. 나에 대한 공감을 그만두는 것을 넘어 나를 비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내가 나를 공감하지 못하면 누가 나를 공감할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누가 날 사랑할까. 모든 것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로 인해 행해진다. 누가 뭐라 해도 모두가 생각하는 세상의 중심은 지구의 어딘가가 아니라 각자, ‘나’ 스스로다.


 그동안의 인연의 실패는 서로가 안 맞았던 것도 있었겠지만,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공감능력의 부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꼈을 것이며, 나 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데 상대를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나의 공감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었다.


 애초에 나는 상대에 대해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나? 나는 나 스스로도 궁금해하지 않는데, 내 미래가 어떻게 될 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상대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었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항상 질문하는 건 상대방들이었고 나는 대답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같이 있을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상대가 누구든 간에 말이다.


그저 나는 나의 외로움에 놀아났을 뿐이다. 상대는 거기에 휘말린 것뿐이고.




 자기혐오로 시작된 심각한 공감능력의 결여는 사회적 학습을 통해 표면적으로 해결은 되었으나 내면적으로는 해결이 되지 못했다. 사랑을 보이고 싶다면 나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악순환의 굴레가 끊어지고 진정한 행복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전 20화 열아홉 번째 생각정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