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지 못한 것의 무게

by 늘람

신책을 한다.

행복이는 꼬리를 흔들며 반 발짝 앞서걷는다. 바람은 차고, 나는 말없이 따라간다. 늘 지나던 길인데, 오늘은 낯설다. 밖은 어제도 오늘도 그대로인데 낯설다.

가지고 있는 것들.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이라던가, 지금 나와 걷는 강아지라던가,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라던가,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는 가족. 오래전부터 내 곁에 있던 것들.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런데 가지지 못한 것들이 더 마음을 흔든다. 더 많은 여유, 더 깊은 이해, 더 나은 문장. 내가 놓친 것들, 도달하지 못한 자리. 부재의 형태가 오히려 선명하게 갈망한다.

가진 것은 가볍고, 갖지 못한 것은 무겁다. 그 무게는 내 마음을 붙잡는 쪽으로 실린다. 중력도 사실 거리의 문제다. 멀리 있는 것일수록 더 크게 잡아당긴다. 물리학의 역제곱 법칙처럼.

행복이는 풀숲으로 향했다. 풀잎 끝엔 아침 비의 물방울이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햇빛을 받아 환하게 반짝인다. 빌려온 빛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태양보다 밝다.

사람은 그 반대다. 많은 걸 가지고 있어도 그 무게를 잊는다. 손 안에 있는 것은 감각이 무뎌진다. 우리의 신경은 변화에만 반응한다.

하이데거가 말했다. 존재는 '아직 오지 않은 무엇'을 향해 있다고. 언제나 '그 다음'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고. '기투(企投)'라 했던가. 우리는 언제나 도중에 있다.

우리는 멈춰 있지 않다. 만족은 순간이고, 그 순간은 지나간다. 기대가 꺼진 자리에 남는 건 다음 갈망. 천체가 궤도를 그리듯, 우리의 마음도 정지하지 않는다.

도파민은 기대의 순간에 가장 활발하다. 성취의 정점은 짧고, 그 후엔 침묵이 온다. 생물학적 설계는 '충만'이 아닌 '전진'을 위한 것이다. '있음'보다 '될 수 있음'에 민감하게.

어쩌면 흔한 삶의 법칙일지 모른다.

왜 내가 가진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걸까.

정지된 감정은 시간 속에서 증발한다. 기쁨도, 감사도 익숙함에 묻힌다. 눈이 망막에 맺힌 상을 계속 보지 못하듯, 변화 없는 것은 사라진다.

가지고 있는 것들의 무게를 다시 느끼기 위해 가끔은 이렇게 걷는다. 그것들이 내 곁에 있음을 눈으로, 손끝으로 확인한다. 충분히 멀리서 바라보아야 그것이 보인다. 사진에 숲을 담기 위해서는 나무에서 멀리 물러서야 하듯.

행복이는 나를 돌아본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 묻는 눈빛이다. 나는 미소 짓는다. 괜찮다고. 여기 있다고. 그 눈빛에는 철학보다 명확한 현재성이 있다. 행복이는 오직 지금만을 산다.

가진 것들은 말이 없다. 그래서 놓친다. 하지만 그 무게는 내 곁에 조용히 있다. 공기처럼, 중력처럼, 너무 일상적이어서 의식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이의 발소리, 바람 냄새, 저 멀리 집의 윤곽, 내 안의 작은 평화. 이것들을 느낄 때 '가지지 못한 것'의 그림자는 옅어진다.

소유의 무게는 관점의 문제다.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현상이 달라지듯, 내가 서 있는 곳에 따라 균형이 바뀐다. 오늘은, 이 자리에서의 충만함을 느껴본다.

그것이 충분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있다'는 사실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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