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우울이와] 특별편 01 - 쉽게 읽지 못할 책을 산 이유
제가 브런치에서 쓰기로 마음먹었던 건 여태껏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잔뜩 치장하고 열심히 가면을 써도 이상하다는 얘기만 들었던 나인데 더 괴상할 그대로의 나의 감정은 과연 통할까, 하는 생각에서였어요. 어차피 오늘만 살 거, 마지막으로 풀어내보기라도 하자 싶어서.
특히 평생 해왔던,
보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말이나 이야기를 계산해서 쓰지 않겠다고.
저는 브런치를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한 없이 우울한. 가라앉은 우울함의 나열이 담긴 첫 게시물부터, 시작 때부터 읽어주던 사람이 있었어요. 거짓이 한 톨도 들어가지 않은 열거한 그 감정들을 계속 지켜봐 온 사람.
초행길에 보이는 가로등 같다고 생각했어요.
라이킷으로, 댓글로. 제 입장에선 보이기 무서운 괴물 같은 내면의 감정들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다는 게 묘한 감정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궤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과거의 이력을 알게 됐습니다. 여태껏 세상에 우울증 수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딱히 특별하고 새로울 것이 없는 서술 중의 하나일 내용이 그분께는 다르게 다가갈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계속 읽어주고 계시는구나. 내 글에 보이는 읽었다는 자국이 보일 때마다 이 분은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지를 신경도 쓰였지만 마음도 쓰였어요. 더듬더듬 짐작해 보기도 했죠.
그때 처음으로 지금의 나를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착한 딸로 생각하고 있을 엄마가 혹시 내가 떠나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기도 했고요.
내 속을 곰팡이처럼 뒤덮은 우울을 병명으로 처음 발견한 건 아빠와 큰 다툼을 한 직후였어요.
아빠는 내 우울에 굉장히 많은 지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고, 입원치료를 권유받을 정도로 중증이었을 때도 혹시 내가 죽으면 남겨질 가족을 떠올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좋아하겠지.
엄마는 좀 슬퍼하려나?
뭐, 그렇다고 해서 동요가 되거나, 그들을 떠올리며 힘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슬퍼할까 봐 버텨야겠다는 마음으로 몸에 상처 내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은 없어요.
미안한데 엄마. 엄마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어.
엄마가 엄마의 기억 속에서 미화시킨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엄마에게는 진짜 힘든 모습을 보여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을 때도, 놀림받을까 봐 화장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을 때도. 성당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친척 어른이 싫은데 자꾸 얼굴을 만지고 다리를 만지는 때도, 사기를 당해서 세 학기치 등록금을 날렸을 때도,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을 때도, 아르바이트비를 주지 않고 사장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통에 정말 한 푼도 없어서 며칠을 굶었을 때도, 노숙을 했었던 때도, 고시원 생활도, 지층에서 사는 바람에 고쳤던 비염계열 질환이 다시 도졌을 때도.
몰아치는 불행을 폭풍처럼 맞느라 당신들의 삶도 겨우겨우 버티는,
그런 힘든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해. 그것도 일 년에 몇 번 안보는 데.
그래서 앞에서는 그냥 웃었어.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는 말을 물을 정신도 없도록 깔깔대게, 시끄럽게 떠들었어.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왁자지껄한 아무 말을 지껄이면, 모두가 쟤는 나이 들어도 철딱서니가 없다며 초딩 애들 보며 웃듯 웃어버리도록. 사실은 엄마가 기억하는 나는 철저히 계산된 가면을 쓰고 정교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던 가짜야. 핍진성 따위 하나도 없는, 그냥 인위적인 만들어진 캐릭터야. 알아서 자기 갈길 잘 찾아가서 걱정할 것 없는 야무진 장녀.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웠을 뿐, 본인의 자녀들은 별 탈 없이 밝고 명랑하게 잘 큰 줄 아는 엄마보다
어쩌면 그분은 진짜 나의 일부분을 본, 엄마보다 나를 더 아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
.
.
그런 당신께서 책을 내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책을 내고 처음으로 북 토크를 한다고 직접 전달한 소식까지 들었습니다.
갈 생각 같은 건 한 적이 없어요. 해서도 안될 거 같고.
존재 자체로 자극이 될지 모르는 저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당신께서 이번에 출간하신 <널 보낼 용기>라는 에세이는 사실 연재발간 하셨던 브런치북으로 전부 읽은 이야기입니다. 한 편을 읽는데 며칠에 몇 줄씩 한 달이 걸리기도 했고, 한편 다, 를 하루에 읽은 에피소드도 있긴 해요. 그렇게 완결된 내용을 읽는 데 몇 달이 걸렸었죠.
몇 번이고 본 내용이어서 새로운 내용이야 있을 게 없었지만,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주문한 인터넷 서점에서 배송하려고 두른 종이 띠지조차도 풀지 못했어요.
새로 수록했다던 에피소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무색하게도,
진짜 내 모습을 알지도 모르는 당신이시라 오히려 무서워서요.
지금은 고3친구들에게 내가 필요하니까 수능까지는 꾸역꾸역 버티겠다 하면서 매일을 살고 있어요. 수능이 끝난 뒤엔 또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할 텐데 저 책이 눈에 보이니 뭔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가득해져서......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의 하나인 나에게는 그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어 이름을 찾을 때까지 나를 못 죽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