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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2 강사라는 생업Ⅱ

by 는개

S# 12-3 '나'의 방 (낮)


_______벽걸이 달력에 형광펜과 펜으로

_______ 빼곡히 적힌 학생들의 시험 일정.

_______시험기간 표시가 겹겹이 겹쳐 있다.


_______침대 위, 이불 걸친 채 엎드려 자는 ‘나’.

_______옆에 던져진 노트북. 화면은 꺼져 있다


_______조용한 방 안, 휴대폰 화면이 켜지는.

_______무음으로 메시지 도착하는.

______ 휴대폰 상단, 팝업창 메시지.

______[[진주] 선생님! 저 백점이에요!!! ]

_______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나

_______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표정은 멍하다.

_______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오후 3시다


_______노트북을 켜는. 부팅음 없이 화면 켜지는.

_______PC 카카오톡 메신저가 자동 실행된다.

_______수십 개의 안 읽은 알람, 열린 채팅창들

______ 학생들의 질문, 답변, 사진, 음성메시지들.

_______새벽 2~3시 타임스탬프가 찍혀 있다


______ 그중 '고1 이빨강' 채팅창에 시험지 사진.

_______거의 맞고 1~2개 틀린. 이어진 메시지.

______ [[빨강] 쌤!92점! 쌤 진짜 사랑해용♡]

_______흐뭇하게 웃는 나.


______ 휴대폰 진동. 발신인‘고1 이빨강 어머니’


빨강 모____선생님, 저희 이번 달까지만 하려고요

_______ (말하려다 말도 못하고 벙찐) 네?

빨강 모____ 수업료 환불 부탁드려요. 감사했어요.


______ 일방적으로 쏟아진 빨강 모 말에 굳는 나.

______ 끊어진 전화 화면 반짝이는.




S# 12-4 강사 사무실 (낮)


_______동료 강사들과 커피 마시며 담소 중인 나

_______떠들고 있는 동료 강사들 사이, 나의 표정.


동료 1 ____요즘 애들, 오르면 바로 그만두더라.

__________고마운 줄도 모르고 깜찍하게.

동료 2 2___별로긴 한데 성적 떨어져서 ________ __________그만두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하하…


_______말없이 고개를 갸웃하는 나

_______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_______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_______복잡한 감정 교차하는.

________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일이다.

클라이언트의 비위도 맞춰야 하고, 나름대로 상사도 있다.

게다가 수업 하나에 클라이언트는 두 명.

학생과 어머님.



학생을 열렬하고 학부모님은 맡기시는 타입이면 정말 감사하지만 대부분은 학부모님이 열렬하고 학생은 심드렁하거나 시무룩하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성적을 올리는 데에 집중했었다.

사교육 강사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으므로.


모든 수업 내용을 성적 올리는데 집중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고

학부모님은 만족하셨다.


... 그런데 아이들이 자꾸 떠났다.







일주일에 한 번, 학생이 되는 날,

어느 날, 내 작품을 합평하는 날이었다.


다니고 있는 드라마 작가 클래스는 전 학생이 돌아가면서 한 학기에 두 작품을 합평한다. 첫 번째 합평작품을 다른 학우들에 비해 많은 지적을 받았는데, 두 번째 합평 작품은 훨씬 오랜 기간을 준비한 작품이라 이번에는 쓴소리를 덜 듣지 않을까.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 한마디 듣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훨씬 많이 지적받았고, 많이 혼났다.


유난히 더 많이 지적받은 것 같아서 가득 적혀 너덜너덜해진 대본처럼 기가 죽어 몇 주를 터덜터덜 다녔다. 그러다 중간 회식 때 작가님께서 술잔을 채워주시며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조금만 더 시키면 훨씬 나아질 게 보여서 쓴소리를 더 했다고. 첫 번째 합평 때 이것만 깨달으면 확 좋아질 것 같은 게 아쉬웠는데 두 번째 작품에서 발전된 게 보여서 평소보다 좀 더 날카롭게 얘기했다고.


그러셨구나... 감사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작품의 퀄리티는 더 향상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었다.

동력을 잃고 몇 주를 우울하게 지내며 내리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의문이 솟아났다.

나도 혹시 그런 선생님이었을까.

성적 올려야 하니까 될 부분을 골라서,

나도 혹시 계속 쓴소리만 하며 재촉했었나.

나를 계속 돌이켜보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에게 나는 다이어트 기간 같은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외국어 같은 고어로 쓰인 시 구절이 읽히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이해하게 되니 평소 공부하지도 않던 국어 숙제에 잠을 줄여가며 많은 시간을 써도 꾸역꾸역 참으며 버텨지는 것이었던 거다. 결과가 나와 몇십 점이 올라 기분 좋게 점수를 받고,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는 못 하겠다고, 못 버티겠다고 떠나는 거였다.


그 때야 또다시 생각했다.

내가 어떤 선생님이었나.


성적, 성적, 점수, 점수.....

안 되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으니 성적 올리는데만 집중하는 강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제야 아이들이 왜 떠났는지,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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