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와 학부모, 결국은 사람과 사람과 사람, 학생과 학생
02
S# 12-1 '나'의 사무룸 (밤)
_______작은 방. 책상 위엔 노트북, 커피잔, 흩어진 원고들.
_______커다란 책상, 위에는 각종 교습자료 쌓여있는.
_______넓은 모니터가 두 개 연결되어 있다.
_______모니터에 수업 자료, 파일들이 마구잡이로 띄워져 있고
_______방송용 조명, 마이크, 카메라 설치되어 있다
_______화면에 띄워진 사이버 강의실.
_______조명, 마이크, 카메라 일제히 꺼진다.
______ 펜을 놓지도 못하고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나
_______나는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_______울리는 전화벨에 손을 뻗는다.
나 ________(전화받으며)네, 주황어머님. 안녕하세요.
주황 모 ____안녕하세요, 선생님.
__________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_________
나________네, 괜찮습니다. 주황이가 또 말썽인가요?
주황 모____요즘 아이가 너무 예민해서요.
__________말만 걸어도 짜증을 내고,
__________밥 먹자고 하면 문 닫고 들어가 버려요.
나________(조심스럽게) 사춘기 아이들이 감정을
__________부모님 입장에선 당황스럽고 속상하시겠지만,
__________그럴 땐 아이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좋아요.
주황 모 ____이게 사춘기 증상인 건지 구분이 안돼서요.
나________네, 맞긴 하는데, 증상이요?
주황 모____실은 주황이, 신경정신과 치료받고 있어요.
__________언어치료도 병행 중이고요.
__________매주 서초까지 데리고 다녀요.
__________사실은 너무 힘들어요. 구분이 안 돼서.
나________(조심스럽게) 사춘기 아이들이 감정을
__________부모님 입장에선 당황스럽고 속상하시겠지만,
_______말없이 고개를 떨구는 나.
_______조용히 숨을 내쉰 후 심호흡 한번 하는.
________
나 _______.... 많이 힘드셨겠어요. 정말요.
주황 모____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그렇고...
__________언어치료도 병행 중이고요.
__________근데 나아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__________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나 ________(다른 학부모님들도 많이 그러세요.
__________고1 엄마는 처음이니까요.
__________헤매는 건 정상이에요. 다들 혼란스러워하죠.
__________육아엔 교과서도 없잖아요(웃음)
주황 모____그 말이... 참 위로가 되네요.
__________감사해요.
나________혹시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__________제가 답할 수 있는 건... 답해드릴게요.,
__________들어드릴 수 있는 건... 들어드릴게요.
사춘기가 온 자녀의 태도와 힘들어하는 학부모와 상담을 했다. 단순한 상담전화였는데, 아닌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이 이러이러한 반응을 보여서 그럴 수 있다고 그럴 땐 이러이러하게 대처하시라고 여러
아이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고,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매주 한 번씩 서초로 언어 치료를 다니면서 아이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사실은 너무 힘들다고.
그러면서 알게 된 속사정들로 이 엄마가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자식 마음에 속 끓이는 학부모를 보며 내 자식이 있는 폴더를 열었다.
한글파일 가득, 텍스트 파일 가득.
나눠진 폴더 안에 또 폴더.
아이디어 폴더 안에 사극 아이디어, 현대극 아이디어. 잡다한 아이디어까지...
완성작 폴더 안에는 그동안 썼던 소설,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작품이 가득하다. 또 다른 미완성 폴더에, 시놉시스, 기획안... 모음.
쌓인 습작들이 멍하게 있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내가 쓴 작품들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면서 병원과 치료센터를 다니지만 낫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표하는 어머님과의 통화내용을 떠올렸다. 작가에게는 작품이 자식이라던데 습작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막막했던 기분이 또다시 몰려왔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 늘어져있는 안갯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을 몇 년째 계속 느끼고 있는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똑같은 자식이라지만(나는 글을 자식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글은 그대로 멈춰있기라도 하지, 성장기의 아들은 계속 움직이고 지속적으로 변했다. 나는 아이보다 그녀가 걱정되어 한 번씩 안부를 물었다. 혹시 필요하면 들어줄 수 있노라 말했다. 그래도 말 못 할 걸 알았다. 오지랖이라는 걸 알면서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면 어쩌나 하면서도 결국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향초 하나를 선물로 보냈다. 그 캔들을 받고 이런 건 왜 보내시냐는 답변에 그저 내 마음이 이랬노라, 하고 써서 보냈다. 그저 진심이었는데 내 진심을 버거워하던 많은 이들처럼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골백번을 스쳤다. 행하다 멈추고, 행하다 멈췄던 과거의 기억이 불꽃처럼 튀어올라 퍼졌지만 그래도 했다. '이렇게 좋은 분이'라는 구절이 휴대폰 메인화면 상단에 미리 보기로 나타났다.
가르친다는 건, 가르치는 사람도 자란다는 뜻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내 안의 무언가를 다시 꺼내 보았다.
학부모를 향한, 부모 코칭에 가까웠던 일련의 일들이, 결국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함께 자라고 있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