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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4 네 번째 불합격, 44점의 불안 Ⅰ

by 는개


S# 14. 강의실 (밤)



_______희미하게 윙윙거리는 형광등,

_______어둑한 창 밖. 빈 책상들. 앉아있는 하양

_______책상 위에는 수능 가채점 한 답안지.

_______구겨진 채 놓여 있다. 고개 푹 숙인 하양.

_______가만히 구긴 종이를 살살 펼치는 나.



하양______쌤, 쌤, 저 어떡해요….

________(가만히 서서 가채점 답안지 보고 있는)

__________왜?

하양______... 수능 망해서요... 수시 보고 쓴 건데

__________최저도 못 맞춘 것 같아요. 가채점이…

________(무표정) 등급 어떻게 나왔길래?

하양______(작게) 국어 불수능이라.... 점수가...

________(단호) 다른 애들도 불 수능이었어.

__________어차피 다 어려웠으니까 똑같아

하양______(작게) 근데 생윤 44점 맞았어요

__________1등급 나와야 하는데….

__________등급컷 뜬 거 보니까 어디는 45고,...

__________어디는 44… 46 뜬 데도 있고.

__________재수까지 했는데 어떻해여...

________그럼 완전히 확정 지을 순 없네. __________기다려보자.



_______스마트폰 움켜쥔 채, 커뮤니티 글 계속 _______스크롤하는 하양.

_______화면 속 숫자들,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_______불안 같다.

_______그러다 갑자기 고개 팍 드는 하양.



하양 ______!쌤은 어떻게 됐어요? 발표 났어요?

___________작가 학원? 아카데미?? 여하튼! 상급반 진학이요!

___________몇 번째 도전이라셨죠?

_________네 번째.(무표정한)

하양______ 결과… 는요?

_________ 떨어졌어.



_______입술 깨물며 고개 떨구는 하양.

_______하양이 못 보는 새, 비소 가득한 나의 얼굴.

_______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_______고개드는 하양, 재빨리 표정관리 하는 나.



하양 ______ (버럭) 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_________(차마 억지웃음도 짓지 못하는)....

___________어쩌겠어. (자조)나는 아니라는데.












혹시 감정에 색깔이 있다면, 하양이와 내가 같은 색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같다기에는 아무리 감춰도 명암은 내가 훨씬 더 짙고 탁하겠지.


그 순간, 빈 강의실은

내가 수업받았던 강의실과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계속 같기만 했던 그 강의실.


그리고 색깔은 다르지만 비슷한 크기의 책상 위에 놓인 하양이의 수능 가채점 답안지.

메일함에 도착한, 너무 무력해져서 삭제하지 못한 불합격 통지서.


매년 하양이들은 있다.

대학 입시라는 벽 앞에서 울고, 재도전하고 있는 하양이들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이번엔, 늘 봐왔던 하양이들에게 늘 해주던 다독임을 해줄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작가가 되는 길은 왜 이렇게 험란할까.

나는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다 못해 이제는 웃으며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 단계의 클래스를 가진 사설교육원, 절반만 올라갈 수 있는 피라미드 형태. 학력 제한도, 나이 제한도 없는 시작선이니 step1에서 step2로 올라가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직장을 병행하면서 겨우겨우 시간을 비워서 수업에 참여하는 학우들에 비해, 글 쓰는 일을 전공한 내가 앞서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잘 쓴다는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전공하면서 투자한 시간이 적지 않았고, 그래도 그 시간들이 있었으니, 미농지 한 장 차이라도 더 있지 않았을까,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돈이 없어 한 학기 다니고 한 학기 쉬면서 알바한 돈으로 다음 학기를 다니며 스물여섯에야 졸업장을 받았었던 그 나의 애씀을 기억했을 뿐이었다. 비전공자들에 비해서 전공을 하면서 온통 글 쓰는 것만 했던 대학시절의 시간이 짧은 건 아니니까.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 길 혼자 고집부려 전공하고 졸업하겠다고 별의별 짓 다 했던, 그 시간들을.


하지만 step2에서 step3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험했다.


step2에서 step3 클래스로 가는 건 진짜 노력이라 믿었다. 그래서 step3 까지만 가게 해달라고. 진짜 뛰어난 사람들이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는 step4 클래스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고 그 밑까지만 가게 해달라고,그저 조금 더 배우고 싶다고 그렇게 빌었는데도.


피라미드 끝까지 가서 장학금 받고 작품집을 내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단계만 더 올라가고 싶었을 뿐인데.


하지만 아직 모자란가 보다.


아니면 이 길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


학생으로 치면 몇 년째 n수생인지 모른다.

대학을 다녔으면 석사를 따고도 한참을 남겼을 시간에 나는 여전히 계속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진학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민망하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많이 들었다)


그래 너네 말마따나 학위도 아니고, 이력서에 기재할 수 있는 증빙서류 하나 없는 데에 왜 그렇게 시간 쓰고, 돈 쓰고, 감정 쓰냐고. 학비라고 얘기하지도 말라고. 진짜 학교여야 학비라고 말하기라도 하지, 도대체 뭐 하냐고.


타박을 들으면서 한 편으로 생각했다.

이 길의 허들은 왜 이리 높지? 대학원에서 석사 따는 게 쉬운 건가? 아니면 내가 지지리도 능력이 없는 건가, 아니면 재능이 없는데 미련하게 매달리고 있는 건가.


창밖에는 늦가을 바람이 불어와 낙엽을 흩날리고 있었다.

그 낙엽처럼, 도전도 매번 흩어지고 흩날려 버린다.


하양이는 휴대폰 화면 속 숫자 하나에 인생이 갈라질까 불안해했고, 나는 메일 속 단어 하나에 지난 시간을 몇 년이나 좌절 했다.



결국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결과는 늘 냉정하다.



그리고 그 냉정함에 하양이가 물었다.

어떻게 하냐고.

나는 속으로 답했다.

나도 모르겠다고.


그 씁쓸한 대답이, 오늘의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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