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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는 여전히 곁에 있어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오늘도

by 는개



의사 선생님께서는 계속 생각을 끊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과거는 끝내 저를 떠나지 않아요.



우울이는 매일 곁에 있습니다.
저는 그 옆에 쪼그려 누워 있지요.
여기가 침대 위인지, 해저 밑인지조차 알 수가 없어요.

왔다 갔다 하던 우울이는 이제 아예 자리를 잡고 제 옆에 엎드려 있네요.
고양이라면 귀엽기라도 할 텐데, 우울이는 그렇지 않아요.



어릴 적부터 저는 문제투성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 감정적이고, 너무 시끄럽고, 차분한 동생에 비해 늘 미숙했지요.


한때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가면을 쓰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도 늘 부족했고, 원치 않게 혼자가 되는 일이 많았어요.
잘해줄수록 상대는 멀어졌고, 불안은 끝없이 짙어졌습니다.



삶에 대한 자신감은 없었습니다.
행복도 없었습니다.
예쁘다고 느껴본 적도, 날씬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요.


웨딩화보조차 제 눈엔 그저 그랬습니다.
억지로 만든 결과였지만, 여전히 예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실패자인 것 같았어요.



사랑받고 싶어 애썼지만, 그럴수록 멀어졌습니다.


“너와 있으면 부담스러워.”
“너는 너무 튀어.”
“네가 말할 때마다 무서워.”


그 말들은 저를 의심하게 했고, 불안은 끝없이 번져 갔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저를 지지했지만, 그 진심을 믿지 못했어요.
외로움은 늘 곁에 있었지요.


저는 점점 행동을 검열했습니다.
인터넷의 말 한 줄에도 흔들렸습니다.
제 선택을 믿지 못해, 모든 결정에는 이유가 필요했어요.


가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도
결국 집에 두고 바라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타인은 알지 못하는 깊은 슬픔 속에서
저는 종잡을 수 없이 울었습니다.
저를 버리고 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저는 왜 여전히 무너지고 있는지 억울했어요.


과거의 사건들은 반복적으로 떠올라
수치심을 쏟아냈습니다.



밝고 명랑했던 저는 변해 갔습니다.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금이라도 삐져나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두려움이 저를 짓눌렀거든요.



저는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숨은 줄어들고, 시간은 늘어납니다.
끝나지 않은 채로, 저는 사라져 갑니다.


우울이는 여전히 곁에 있습니다.
떠날 기미는 없어요.


그저 이렇게, 무너져 가고 있을 뿐이에요.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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