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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ul 31. 2019

사랑하고 살아가고 나아가고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한 명의 에디터가 쓴 리뷰와, 여러 에디터가 함께 나눈 대화가 각각 업로드됩니다.

*7월의 주제는 [여행]입니다.


*7월 주제 [여행] 일정표

1.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3), 리들리 스콧

2. 책 『대도시의 사랑법』(2019), 박상영

3. 영화 〈안경〉(2007), 오기가미 나오코

4. 책 『박막례, 이대로 죽을순 없다』(2019), 박막례·김유라



0. 들어가며


  지난 발제에서는 여행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탈주가 된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발제작으로 어떤 작품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고른 책은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사실 '여행'이라는 주제로 책, 특히 소설을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럴바엔 정말로 지금 읽고 싶은 책을 다루자는 생각이 컸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출간된지 한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박상영 작가의 연작 소설집으로 네 개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소설은 모두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책을 골라 놓고 보니 이번 키워드였던 ‘여행’과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어느 정도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1. 사람과 공간과 기억


 “때때로 공간에 대한 기억이 사람이나 일화에 대한 기억보다 앞설 때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 255p


  소설 속에서는 여러 공간이 등장한다. <재희>에서는 재희와 영이가 서로를 동성 친구로 가장하고 함께 살았던 집이 등장하고,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는 '영'이 푹 빠진 띠동갑 형을 쫓아다니며 찾아갔던 집과 그와 데이트했던 장소이자 만나기로 했던 조각 공원이 등장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규호와의 만남에서도 장소들이 우선한다. 규호가 일했던 이태원 클럽, 혜화 어딘가로 생각되는 나의 집, 함께 여행했던 인천과 방콕 등이다. 이처럼 소설의 등장인물은 여러 장소를 누빈다. 대부분은 서울이라는 대도시 어딘가이며,  마지막 수록 작품인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서는 방콕 여기저기를 여행한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만나는 공간을 전제한다. 때문에 어느 장소를 떠올리면 그 장소에서 함께 했던 사람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반대로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도 그 사람과 자주 함께 갔던 장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지난 사랑과 사람의 추억을 되새기는 소설이기에 장소에 대한 묘사도 빠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연인끼리 여행을 하면 무조건 싸우게 된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그보다도 두려운 것은 결국 그 여행의 기억이 모두 그 연인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애는 실패로 끝이 난다. 때문에 즐거웠던 여행을 추억하고 싶음에도, 그 여행을 추억하는 것 자체가 지난 만남을 추억하는 일이 되곤 하는 것이다. 안 좋은 헤어짐을 겪었다면 두 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영'도 어플에서 만난 하비비로 인해 규호와 여행했었던 방콕을 얼떨결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규호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함께 온 사람은 하비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는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 '영'에게는 규호와 함께 했던 방콕이 너무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여행을 통해 규호의 빈자리와 자신이 규호를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생각했었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3. 퀴어의 사랑법


  소설은 퀴어의 연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의 사랑이 퀴어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냥' 연애이야기이구나 싶었다. 영과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지는 과정뿐 아니라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까지도 이성애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다 똑같이 만나고 헤어지고. 이를테면 친구와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며, 푹 빠진 사람에게 헌신하며 쫓아다니는 것이며, 사랑하더라도 끝내 좁혀지지 못한 가치관의 차이로 헤어지는 것이며, 오랜 연애를 하게 되면서 점점 일상 속에서 익숙하지만 편안한 연애를 하게 되는 것들이다.

  특히 소설의 화자인 '영'이 대학생일 때부터 취준생이었다가 직장인이 되는 시간의 변화와 함께 연애 또한 점점 성숙해져 가는 것이 정말 있을 법한 어느 청춘의 모습이었다. 또한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인 혜화와 낙산공원 등이 매우 익숙한 장소이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각각의 공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때문에 그 공간 어딘가에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었고 존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어긋나다가 또 가까워졌다가


  소설 전반적으로 통통 튀며 발랄한 느낌을 주는 것과는 별개로 해설에서도 지적하였듯이 모든 소설이 다 통쾌한 끝맺음은 아니었다.  <재희>에서의 재희는 수없이 많은 남자들과의 만남과 함께 했던 '영'과의 동지애를 뒤로 하고 어느 한 남자를 만나 안정적인 결혼에 도달하게 되고,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서 띠동갑 형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영은 엄마의 마음을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카일리로 인해 함께 중국으로 떠나지 못하고 규호와 헤어지게 되고,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끝내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야기하며 끝이 난다. 통쾌하게 어떤 고난이든 시니컬하게 무시하며 이겨낼 것만 같은 인물들이지만 또 끝내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어느 정도는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회초년생의 모습이 잘 투영되어 있다고 느꼈다. 어느 세대보다도 풍요롭게 자랐지만, 취업난 속에서 또 어느 세대보다도 치열하게 현실의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정도는 타협하되, 그래도 나만의 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아 더욱 공감하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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