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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출근길 성장 에세이 Oct 30. 2024

김밥의 관록

내 김밥은 언제쯤 안터질까

나는 김밥을 좋아한다. 우리 신랑도 김밥을 좋아한다. 우리 아들도 김밥을 좋아한다. 고로, 우리집의 밥을 담당하는 나는 김밥을 잘 싸고 싶다. 어렸을적 엄마는 소풍, 체육대회 때면 어김없이 김밥을 쌌다. 김밥을 싸는날이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잠이 깨곤 했다. 엄마의 김밥을 아주 단순했다. 계란지단, 햄, 시금치, 단무지...... 4개 재료만 넣었는데도 갖은 기교를 부린 요즘 김밥보다 맛은 훌륭했다. 김밥을 싸는 날이면 그날 아침 메뉴도 김밥이다. 김밥은 두끼를 연달아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김밥을 한 20줄 정도 싸면 그때는 그 중 가장 예쁜 김밥을 골라 우리 스뎅 도시락에 싸주셨다. 엄마의 동그란 김밥은 그 안에 밥알도, 재료들도 빈틈없이 가득 가득 차 있었다. 모양도 동그랗게 퍽 예뻤다. 김밥을 썰고, 차곡차곡 두줄로 쌓고, 그 위에 참깨를 뿌리면 도시락 완성. 


점심시간에 엄마의 김밥을 열면, 때론 당근, 맛살이 들어있는 화려한 김밥에 엄마김밥이 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맛은 참 우리엄마 김밥이 최고였다. 나도 엄마를 닮아 김밥을 잘 싸소 싶었다. 

요즘에는 곳곳에 깁밥집이 있고, 심지어 24시 편의점에서도 김밥을 팔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서 김밥을 직접 쌀 일이 없다. 


신혼 초 김밥을 싸게된 계기는 바로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나온 묵은지 참치김밥이 먹고 싶어서였다. 

숙대 근처 허름한 집의 묵은지 참치김밥은 내용이 실하고, 묵은지가 가득담겨 개운해보였다. 

그래 도전! 묵은지부터 참치, 깻잎등 일단 김밥재료를 준비하는것에서부터 나는 지쳤었다. 

재료를 다 준비하고 나니 김밥을 쌀 에너지 20%가 남아있었다. 

정신력으로 김밥을 쌌다. 결국 5줄 싸고 먹고 그 다음에 바로 2시간 내리 잤다. 

넉다운. 그다음에는 유치원난 아들이 김밥타령을 해서다. (처음 김밥을 쌋을때는 아들이 아기였는데) 

싸긴 쌌는데 허술하기 기지없어 금방 풀어졌다. 

그 다음, 지난주 김밥을 쌌다. 이제는 초등학생인 아이. 

김밥을 말때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손가락 끝에 힘을 주고 재료를 마사지 하듯 꾸욱 눌러 말았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김밥을 한줄 한줄 썰기 시작했다. 

첫 김밥 꽁다리가 떨어져 나갔을때. 짠! 동그랗고 속이 꽉찬 김밥으로 떨어졌다. 허술한 김밥이 아닌. 

신기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진 않았는데 그간 내 손에 붙은 살림의 경험이, 김밥을 싸는데도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콩나물을 무쳤을때 그 힘, 야채를 썰었을때 그 힘, 무언가를 볶을때 그 힘. 

그 힘이 손가락 끝에 붙어, 드디어 야무진 김밥이 됐다. 다음에는 김밥을 언제 싸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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