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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Sep 16. 2015

당신의 인터뷰 #1  허정환

NANO BLOCK interview

NANBLOCK Interview

전부터 알았던 사이지만, 처음으로 마주 앉아 봤다. 그는 특유의 소탈함을 보였고 곧이어 몸에 밴 듯 예의 바르게 문을 열었다. 그렇게 스물여덟, 그가 만들고 있는 세계 안으로 들어섰다. 허정환의 나노 블록 인터뷰   

           

  적어도 그에겐 여유 충만한 일요일은 아니었을 듯싶다서울에서 이른 점심을 약속한 터였지만이미 아침부터경기도 수원에 있는 학교 연구실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이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에게는  주의 대부분을 보내는지금은 무엇보다 삶의  비중을 차지하는 알고 보니 불과 5분이면 해결될 일로  장거리를 움직였다고기분 좋게 그의  번째 블록 하나가 달그락거렸다.

 

허정환은 필자의 절친한 친구의 동갑내기 애인으로덕분에 필자와도  다리 건너 종종 안부를 묻는 사이이들 커플의 아웅다웅한  샷과 미지의 영역에 있는 피실험자가 욕심난 까닭에 제안한 인터뷰가 드디어 실현된 것이었다.미지의 영역이라  데는 사전에 파악할 만한 정보가 턱없이 미지근한 것들뿐이었기 때문도 있지만그에게는  인터뷰이로 선택할 만한 범상치 않은 이유도 분명 있었다단백질을 연구하는 과학도최근 대세인 요리하는 남자질투조차 당당하게 하는 열정적인 사랑가인 동시에 결정적으로 여자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매력  하나인 ‘세계 평화 꿈꾸는 사람궁금증이 도질만 했다다행히 공격적이지도별나게  필요도 없이 그의 세계를 둘러볼 있었다.

 

뜻밖에 그는 대화의 포문을 여는 동시에 삶의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그것은 요즘 20대의 누구나가 그렇듯 성공의정의에 대한 고민이었고남과 나의 차이에서  모호한 물음이었고 나은 내일을 위한 긴장이었다그는 일찍부터 리더 역할을 즐겨왔다고 했다학창시절 도맡은 학급회장부터대학 검도 동아리와 지금의 연구실 방장까지얼마  퇴소한  훈련소 생활 중에도 소대장이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별다른 거만함도 그렇다고 겸손 역시도 느껴지지 않았으나책임감과 확신에  자신감은 퍼뜩 보였다본래 여러 사람을 대표한다는 것은 마찰과 융합의 반복임을 그는 익히 알고 있을 테지만최근 직면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는  맞이하는 하루하루처럼 줄곧 새로운이에 그는 도전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분노를 느끼곤 한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건지를. 그래도 지금 힘든 순간을 헤쳐내고 나면 분명 또 한 단계 성숙해질 거라 믿는다.” 

약간은 격한 감정을 나타내다가도 그는 별안간 아무렇지 않다는  자신을 정리했다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그렇다면 그는 낙관론자일까긍정적 마인드자신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외고에 진학하자마자 부모님을 따라 괌으로 유학을 떠나 뉴욕에서 대학 졸업  귀국박사 과정에 진학한 것은 요즘에야 흔하다면 흔한 ‘스펙이지만절대 평범하지만은 않은 그의 지난날에 먼저 눈이 갔다행여 모든   풀리는 ‘엄친아자라온  아닐까 싶었더니 의외의 블록이 하나 굴러온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엄친아’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실 스스로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 

엄친아 피해자로 여기까지 왔다는  적잖이 예상 밖이었지만완전히 판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봐도 공부 벌레나얌전한 모범생으로 보이진 않으니까그래도 호기심 충만하며지극히 공부에 취미를  ‘학자형’ 인간임은 분명한 사실공부를 그만두고 싶을  언제인지 물었더니대기업에  친구들어린 나이에 스포츠카를 모는 이들을  때라고는 해도공부하는 행위 자체에서 갖는 회의는 없다니 말이다경제적인 문제특히 대한민국 남자가느껴야 하는 불안은 아프지만 불가피한 그래도 광나는 스포츠카를 보며 종종 허탈해했을 그에게선 책임감 있는남자와 아이 같은 천진함이 동시에 느껴져 재미있었다이어 그는 열등감이 채찍질해온 노력이 자신의 가장  무기라고 말했다그리고 뭐든 끝까지 가보는  좋단다그에게 있어 자신감은 일이  풀린 결과보다도 그간 쏟아 부은노력의 무게에 비례하나 보다그렇게 식을  모르는 노력만큼무한히 충전되는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인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어느 쪽일까? (이하 문답)


* 본인의 꿈인 ‘세계평화’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가.

-일단 단계적으로 말하면, 학교를 마친 후 전공분야에 필요한 연구 성과를 내고 싶다. 그 역시 세계 의학 분야에 작게나마 이바지할 것이라 믿는다. 또, 학자로서의 소임을 이어가는 동시에 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촉각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UN사무총장으로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게 나의 최종적인 꿈이다. 특히 기아 문제에 앞장서고 싶다. 여러 사회문제 중에서 인간이 굶어 죽는다는 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는 세계적으로 극도의 불균형 상태인 가치의 분배 때문이다.

*가치의 분배란 어떤 개념인가.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4,000원이라는 금액이 커피 한 잔을 사 마실 정도의 가치를 지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러 명의 사람이 끼니를 해결해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할 정도의 큰 가치다. 가치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인데, 이 불균형을 해소해야 기아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무수한 꿈을 꾸었을 ‘세계평화라는  글자의 담대함이 긴장을 부를 법도 했으나그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온 말을 차분하게 꺼냈다가볍지도길지도 않은 ‘꿈의 대화 나누는 동안 창을 통해 빛이 환하게 새어 들어왔다자칫허무맹랑할 그것을 적어도 뱉어낼 자격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납득하게  순간.


이야기의 절정을 넘어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하기 위해 지금 그와 내가 마주앉은 뒤편 테이블에서 독서에 매진하고있는 필자의 친구에게 눈길을 돌렸다물론 그녀는 인터뷰에 ‘늘어나는  쓰지 못하도록 이어폰을 꽂고 있다우리는 잠시  모습을 의식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확하고 분명한 것을 목숨처럼 여기는 과학도가 아닌가. 하지만 아다시피 슬(그녀의 이름)은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다(그녀는 ‘필자의 절친임에 걸맞게’ 스스로 감성적인 인간임을 인정하는 감정의 추종자이자, 나노 블록보다도 섬세한 여자). 두 사람이 연인으로 지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나.

-처음에는 물론 어려웠다. 당시의 나는 인간이 이성적, 감성적이라는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뿐더러,연애의 고수도 물론 아니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도 허다했고 그 차이를 알지 못하니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 계속 만날 수 있었던 건 ‘사랑의 기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물론 많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만큼 대화도 많이 하게 됐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면 그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이해했고 그게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

*고집이 센 편임에도, 여자친구에게는 많이 맞춰주는 것 같다.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스스로도 정말 고집이 세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변화하고 바꿔나가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나 스스로가 변화하고 싶고 또 그래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게 지내 온 오랜 연애를 통해 어떤 게 변했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만나고 있는데(이들의 연애 기간은 2년 반가량), 작은 것들을 인정하면서 많이 안정됐다.그런데 요즘은 내가 더 감성적이라고 느낀다. 전에 없던 질투도 생기고. (웃음) 반면에 슬인 전보다 이성적인 것 같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 법이라고 속으로 되뇌 그렇게 한동안 그가 풀어놓는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내내 그는 속내를 털어놓는  막힘이 없었다분명 자신이  있는 자리를 누구보다  아는 사람일 것이리라 삶의 내일은길이 닦여있지 않아도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우리는 훌쩍 지난 시간 앞에서 긴장을 풀고 불혹을 맞을  즈음다시   이야기를 나누자 약속하며 일어섰다.

 

그의 세계는  마디로 ‘내실 있다 말이 어울린다아직 완벽하지 않음에도 청사진을 쥐고 있는  그것은 열려있는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견고했다마침  커플이 요즘 한창 빠져있다는 나노 블록은 아주 작은 블록들을 맞춰하나의 모형을 완성해내는 눈이 빠질 듯한 시간이 이어지지만이내 모양이 갖춰지면 상응하는 성취감이 있기에 수고도 감내할 만한 놀이다노력을 사랑하는 사람책임을 지고 끝까지 가보자는 심지 사람에 대한 너그러움…… 허정환의 나노 블록들이 틈을 맞춰 어떤 세계를 세워갈지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일지라도 하나 예상 가능한   완성이 끝내 그레이트(Great)블록 스트럭처가  거란 . ■SEP. 2015


인터뷰, 글/ 황은비(olocbo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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