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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Sep 30. 2015

당신의 인터뷰 # 에필로그

EPILOGUE of SEP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다. 그 많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저 바라볼 뿐이고, 생각하며 이야기가 끈을 놓지 않게 때론 팽팽히 당기거나, 느슨히 힘을 풀거나 한다. 가끔 영 길을 벗어나려는 순간에는 끈이 쥐여있는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한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이 창작과 전혀 관련이 없지 않더라도, 인터뷰 자체만 놓고 봤을 때, 나의 역할은 전능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일로, 오히려 트레일러에게 주어진 걷기 좋은 운동화의 그것에 가깝다. 문제는 이 운동화가 걸음은 잡아주되 당연히 목적지는 모른다는 것. 그래서 항상 인터뷰에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엄한 산으로 올라갈 위기가 도사린다고 느낀다. 게다가 나는 이제 제대로 된 인터뷰를 불과 몇 번 해보지도 못 한, 초보 인터뷰어. 되도록 인터뷰이에게 들키지 않으려 포커페이스를 머릿 속에 새기기는 하나, 머릿 속은 요동을 치고 적재적소의 질문을 꺼내는데 필요한 집중력을 잃지않으려 부던히 노력한다. 동시에,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이미 잡동사니같은 이야기에 빠져있을 때가 부지기 수인데다가, 인터뷰 녹취를 들으면 방청객 모드가 따로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특히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허송세월만 보내고 끝난 것 같은 인터뷰일수록 좀 더 괜찮은 글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몰차게 끊어내지 못하는 편인데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깊게 파고 들어가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반대편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이야기는 별 성과 없는 부분이 되고 말때도 있지만, 그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되곤 한다. 의도치 않게 말하고 들었던 것들이 절묘한 타이밍에 빈 부분을 채우는 퍼즐이 된다. 꼭 굵직하게 보이는 감정, 사건, 특성이 아니라도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은 유기적이기 때문이다. 곧, 상대가 편안해질수록 그 너머 더 많은 것을 보게 될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사회에 큰 획을 그은 사람도, 만인이 궁금해하는 긍정 혹은 부정의 유명인사의 삶도 아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평범한 사람의 삶이다. 모든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누구나 알고있는 말의 실현이자, 누구나 재미로 한 번쯤은 그려봤을 초상화와 마찬가지다. 다만, 당신이 털어놓는 삶의 파편들로 만들어지기에 조금 더 뚜렷하게 자의식을 반영한다. 또 이는 진솔한 대화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이 알게하는 일이다. 삶의 무게는 애초에 다른 누구와도 절대 나눠질 수 없는 것이나, 적어도 눈을 마주하는 그 순간엔 한껏 가벼워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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