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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Sep 29. 2015

당신의 인터뷰 #2  박성민

마지막 타석의 인터뷰

지막 석의 인터뷰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빠듯한 시간에 서둘러 걷기도 했겠으나, 긴장되는지 줄곧 날숨을 뱉었다. 커피를 못 마신다는 그에게 키위주스 한 병과 반가운 마음을 건넸다. 이제 우리는 건넛마을 소식처럼만 전해 듣던 그의 삶을 이야기할 것이다. 마지막 타석의 인터뷰, 박성민



살.다.보.면


  살다 보면 건너건너 소식만 전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과감한 결정일수록 더 빨리, 더 많은 이들 사이에 오르내리지만, 미처 자세한 정황은 듣지 못한 채 그렇구나 하고 그저 넘어가곤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의도야 어찌 됐건 타인의 삶에 주의를 두기가 조심스럽기도, 또 그만큼 무심해지기도 하기에. 박성민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필자는 최근 2년간 대학동기인 그에 대해 굵직한 소식을 줄곧 들어 왔던 터였지만 어째서, 어떻게 그쪽으로 흘러가는지는 차마 묻지 못했었다. 그는 꿈에 부풀어 취직한 회사에서 얼마 못 가 퇴사했고 어느 날 갑자기 호주 행 이민을 결정했다며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추석을 한 주 앞둔 오늘 우리는 강남의 한 커피숍에 마주앉아있었다. 마침내 그 의아스럽던 행보에 해명의 열쇠를 꽂는 순간. 가볍게 근황부터 묻는다.

 

* 정말 오랜만이다. 호주에서 돌아온 지도 꽤 된 걸로 알고 있다. -나도 반갑다. 작년 이맘때, 2014년 9월에 귀국했으니, 벌써 1년 전 일이다.


*지금은 다시 취업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하반기 채용 시즌이 중반을 넘어서는 중이라 요 며칠은 좀 바빴다.이제야 조금 숨 돌린다.


*주로 어떤 분야에 지원하고 있나. -국내외 영업과 마케팅 업무다. 특히 외식, 화장품 분야에 관심이 많다.


*음식과 화장품이라니 조금 의외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직접 요리해 먹는 것도 좋아하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화장품은 호기심에 관심 가지다 보니 어느새 친숙해졌다.


* 그럼 요즘은 어디서 지내고 있는지(그의 고향은 울산) -서울 신림동에 방을 얻었다. 지하라 어두운 편이지만, 지낼 만하다.

 

상투적이게도 ‘오랜만’이란 말로 인터뷰의 운을 뗀 것은 지금 생각하면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지 않게 낯선 느낌 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의 그는 대학 시절 노는 일이라면 솔선수범인 까닭에 지금까지도 길이 남은 전설적인 일화들에는 어김없이 등장, 그것에서 오는 ‘악동’ 이미지가 없지 않았다. 그런 박성민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스터디, 신문,자기계발, 비전 같은 단어들이 잠시 혼란스러웠음을 인정한다. 더불어 한층 낮고 굵직한 목소리와 표준어에 가까워진 경상도 사투리도 그와 진중한 이야기를 나눈 지가 꽤 오래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슬슬 추억과 현재 속 박성민의 괴리를 이어내야 할 차례, 인터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본론으로 들어갈 표지판을 찾는다.

 


그 사이의 시간

 

*취업했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3년 하반기다. 제대하고 나서 공부와 여러 대외활동 등을 병행하며 열심히 살았고 졸업 전 취업에 성공했다. 입사는 이듬해 초, 어느 때보다 기대에 찼던 때다.

*헌데 5개월 만에 퇴사했다. 인지도, 규모 등 다양한 면에서 뒤지지 않는 회사였고, 희망하던 업무였는데도.

-원하던 자리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고 내게 주어진 업무는 매우 비윤리적인 것(소위 ‘갑질’)이었다. 특히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그 가치란 무엇인가.

-사람이다. 내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고 인연이다. 그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 역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파트너십 없이 지위를 이용해 누군가를 강제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때문에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 어떤 조건에서라도 더는 할 수 없겠다고 결정했다.

*단순히 보면 회사와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아 결정한 퇴사이지만, 나아가 한국 사회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을 법도 하다.

-그것도 맞다. 후에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일단 자소서 쓸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이민을 결정한 데도 크게 작용했겠다.

-마침 호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외삼촌으로부터 일을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솔깃한 제안이었고, 고민 끝에 가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가 갑자기 이민을 간다며 SNS에서 짤막한 인사를 남겼을 때, 주변인들은 처음엔 폭소했고, 차마 믿지 못해 농담 아니냐고 거듭 물었고, 결국 놀라 몇 마디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그는 호주 애들레이드로 떠났다. 사실 그의 호주행은 그로부터 2년 전, 워킹홀리데이에 이어 두 번째였다. 당시에도 외삼촌이 계신 곳으로 해외경험차 떠난 것, 1년 간 일도 하고 친구들을 사귀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시 간다고 해도 호주를 택할 것이다.”

처음 애들레이드에 간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눈빛이 반짝인다. 역시 그곳에서도 사람. 호주인들의 외향적이고 여유로운 면이 사람 좋아하는 그와 잘 맞아 떨어졌다. 찌푸릴 줄 모르는 인도양의 해처럼 해맑았던 추억을 안고 그는 다시 애들레이드 땅을 밟았다. 이민이라는 중대한 고민 앞에서 모험 삼아 한 번 가보라는 이도, 가지 말라는 현실적인 이들도 분명 있었으나, 그는 작은 배가 그렇듯 한시도 멈추지 않고 흔들리는 하루 속에서 가지 않으면 절대 오지 않을 그 날들이 궁금했다. 보장된 미래라는 것, 영영 한국을 떠나있는 것, 한 템포 느리게 살 수 있다는 것……. 호주에 터를 잡는 일은 그의 모든 삶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었고, 왠지 모르게 두 번째 호주행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이번 항공권은 편도였다.

 

“다시 만난 애들레이드는 좀 달랐다. 날씨,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였는데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매일 꿈에서는 한국에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멍하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했다.”

마음을 두고 왔으니, 발붙이지 못할 법도 했다. 체류 2개월째, 그는 본격적으로 귀국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곳엔 조금 더 편하고 보장된 삶이 있었지만, 그가 원하는 삶의 맛이 없었다. 그리고 3개월 차에 마침내 ‘귀국’했다. 이 단어가 굴러 나오자 빈 상자가 지난 이야기를 대강 다 벌여냈다고 덜컹 인다. 끝내 돌아오지 않으리라 했던 이는 피할 수 없을 야유, 의아한 시선, 쏟아질 질문세례조차 그리워 마음이 있는 제자리를 찾아 다시 왔다. 끝내 그곳은 출발점이었지만, 가보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을 끌고 다녔을 미련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늘의 시작

 

이제야 더없이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동안 마음은 쓰렸겠다 싶어 물었다, 후회했느냐고. 하지만 그는 아니라고 했다. 후회하지 않는 것이 과감히 내디뎠던 발인지, 그것을 다시 거둔 것인지 혹은 둘 다인지는 묻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굳은 확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스스로 지금이 투 아웃 상태가 아니겠느냐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이라 느꼈다. 옳고 그름 떠나, 무엇을 좇아야 후에 떳떳할지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강단이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늘 가치의 중심에 사람이 있는 사람. 그를 설명할 문장에 빠질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가 가장 힘주어 말한 단어는 ‘사람’. 마지막까지도 그는 주변을 위해 자신을, 자신을 위해 주변을 지키며 살 것이라 한다.


그의 오늘을 잠시 언급하자면, 앞서 말했듯 올 해 안에 취업하기를 목표로 잡고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살 연하의 여자친구와 연애도 시작했다. 스코어는 없다해도 순조로운 날들, 방망이를 고쳐쥐고 날아 올 공을 자신있게 기다리는 그다. 인터뷰는 끝으로 갈 수록 더욱 편안해졌다.

 

박성민은 늘 마지막 타석에 선 것처럼 산다. 나는 겨우 사회 초년에 벌써 마지막 타석을 말하는 것이 안타까워 투 아웃이라 할 것까진 없다 덧붙였지만, 오히려 그는 여유로웠다. 이번에 주어지는 자리에선 적어도 포기 않고 끝까지 가볼 생각이란다. 조금 돌아왔어도, 친구들은 해저 2만 리라 부르는 어둑한 자취방에서 자신의 요리를 즐기며 내일을 준비하는 그는 지금 어느 때보다 편안하다. 이번 기회도 물론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다음 게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음, 아니면 또 그다음 타석이 있음을 아는 이에게 영영 쓰리 아웃은 오지 않을 것, 두고두고 승률을 지켜볼 만한 타자가 아니겠나. ■ (SEP, 2015)


인터뷰, 글/ 황은비(olocbo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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