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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Sep 30. 2015

당신의 인터뷰 #4 정재민

HAPPY TALK


H A P P Y  TALK

스스로 욕심은 많지 않은 편, 너무 열심히 사는 것도 자기 타입은아니라고 고개를 젓다가도, 한계는 자신이 정하고 늘려가는 것이라며 놀라운 말을 꺼내는 사람. 들을수록 재미있었던 그녀와의 인터뷰 후기. 정재민의 HAPPY TALK



리가 만난 것은 아직 기분 좋은 토요일 오후기억  어린 티를 벗고 제법 직장이 태가 나는  여자가 앉아있다그녀는 대학후배인 정재민, 졸업  왕래가 없었던 터라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반가운 동시에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대됐다메시지가  것은 어느 저녁, 첫 업무과실로 회사에서 한바탕 일을 치른 후 우울한 가슴을 안고 보낸 문자였다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토해내듯 말한다. 그날도 사정상 일찍부터 출근해 일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란다사회생활 4개월 이제  발을 디딘 것이니만큼 하소연 중에도 설렘이 느껴진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나는 그녀에 대해 조금 더  필요가 있었다호구조사 하듯 프로필을 캐치했다정재민은 부산 출신, 대학  서울에 왔고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금융기업 CEO의 비서다이 밖에 기본 이상의 클라리넷 연주실력약간 빠르고 활발한 말투를 지녔고, 다부진 입술과 부드러운 턱선검고 굵은 머리칼이 눈에 띄며, 현재 애인은 없다.

이제부터 인터뷰는 그녀에게 바통을 건넨다.


* 아무래도 요즘 가장 주의를 두고 있는 것은 직장이겠다. -그렇다. 직업 특성상 바쁘기도 하고 첫 직장이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다. 또, 정규직이지만, 수습을 떼려면 더 힘써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일은 적성에 맞는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일이 재미있어서 잘해내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원래 누군가를 챙겨주는 일에 익숙하고 또, 좋아하는데, 주요 업무와 스케쥴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백업(지원)하는 비서직은 그런 면에서 잘 맞는다. 

*그렇다면 요즘은 아무리 바빠도 즐거울 것 같다. 특히 취준생시절 보다는 훨씬. 

-당연히 그렇다. 행복하다. (웃음) 

*정말 축하할 일이다. 그럼 직장 외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MEET UP이라는 영어회화 모임에 나간다. 여러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좋은 기회다. 회화시간 후에는 다 같이 뒤풀이를 하는데 그 재미도 쏠쏠하고 자주 봐서 친해진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소개팅도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다.


근황 토크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선수답게 우수수 이야기를 쏟아낸다. 보통 첫 직장에서 현실에 발을 담근 초년생들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제법 ‘쩔어’ 있게 마련인데, 재미는 좀 달랐다. 그녀에게는 쩔어있는 시간이 없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조차 대수롭지 않게 그냥 다 좋다고 으쓱 대답하는 것을 들으며 분명 타고난 자기 통제력, 탁월한 스트레스 해소법 둘 중 하나는 있을 거라고 추측하게 된다. 비결이 궁금해 경쾌한 대화의 화살표를 과거로 돌려봤다.


*어릴 때 이야기를 좀 해보자.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나. -아니다. 공부는 싫어했는데, 그래도 하긴 하는 학생이었다. 엄마가 공부를 시키는 편이셔서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덕분에 특별히 잘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은 서울로 올 수 있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 친구가 많았을 것 같다. -친구 만나는 건 그때부터 좋아했다. 새로 사람을 사귀는 일도 큰 부담이 없었다. 외항사 선원인 아버지와 일찍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 오빠 덕에 집이 대체로 조용했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있는 시간도 많았던 것 같다. 

*클라리넷을 어릴 때부터 배웠다고 하던데. 전공할 생각으로 시작했나. -아니다. 클라리넷은 피아노학원을 그만두는 대신 시작한 엄마와의 일종의 ‘딜’이었다. (웃음) 중학교 3학년까지 배웠다. 특별히 재밌었던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오케스트라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음악도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대학 음악동아리에 들어온 것이겠다. -맞다. 초등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서툰 클라리넷 실력으로도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중에도 꼭 하리라고 다짐했다. 자드락(동아리명)은 그 실현이었고 덕분에 음악 외에도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지금도 수시로 만나는 대학친구들. 누군가가 필요할 때 서로 부담 없이 의지하는 사이, 서울에선 오래 본 걸로는 이들이 유일하기에 더 각별하다. 

*공부가 지겨워 대학에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는데, 기대에 부응하던가. 

-전혀.(웃음) 대학도 역시 공부의 연장, 취직의 관문일 뿐이었다. 전공으로 선택한 경영학은 경쟁률, 취업률 등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 골랐기 때문에 학문적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일단 공부하기가 싫었다. 그나마 동아리에서 탈출구를 찾았고 대학 시절 주된 추억이 됐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마쳤을 때 나는 그녀를 약간 소극적이라 생각했다. 흘러가는 대로 잘 따르는 모양은 보통 순종적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기에.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분명 원천이 있을 남다른 에너지가 아직 미제로 남아있으니 속단할 수는 없었다. 재민의 삶에 흥미라 할 수 있는 부분을찾아보기로 했다. 무엇이 재미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걸 잘 모르겠다고 운을 떼는 그녀의 대답은 식은땀을 유발했지만, 영 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지는 않았다.


*본인에게 있어 재미있는 일은 뭔가. -사실, 잘 모르겠다. 사람 만나는 일은 정말 좋아한다. 재미있기는 한데,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사람 만나는 일이라고 답하기가 애매하지 않은가. 

*글쎄, 본인이 그렇다면야 사람 만나는 일도 충분히 취미가 될 수 있다.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충족, 해소되는 게 많으니까. 보통 만나면 뭘 하나. -근.황.토.크(웃음) 보통 싱거운 얘기로 시간을 보내게 되기 쉬운데,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들어주는 게 좋다. 

*대화를 주도하는 편인가. -그런 것 같다. 상대에게 묻고 듣기를 즐긴다. 

*그러면서 무엇이 충족될까? -세상 사람이 정말 다양하지 않은가. 그걸 듣고 알아가는 게 신기하다. 

*그걸로 스스로 동기부여 하는 것인가-그것보단, 나와 달라서인지 다채로운 삶에 호기심이 생긴다. 

*술자리, 술을 좋아하는 편인지. -잘 마시는 편은 아닌데, 취업 후에 주량이 늘었다. 지금은 한 병 반 정도. 

*취미가 없다고 했는데, 적어도 관심 가는 것은 없나. 

- 음…. 아이돌, 요즘 대세인 요리 등, 한 분야에 집중되진 않지만, 세상사에 두루 관심은 많은 편이다. 

*본인은 요리하는 여자? -사실 요리는 하는 것보다 보고, 먹는 걸 더 즐긴다. 그래도 엄마 솜씨를 닮아 소질은 있는 것 같다. 내가 해먹는 게 대체로 사 먹는 것보다 맛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뭘 하는지. 스트레스 해소법? -자는 편 아니면, 누워있거나(웃음), 영화도 자주 본다. 

*대체로 충전의 시간인 것 같다. -맞다. 영화도 대화하려고 본다. 주로 함께 있는 시간을 위해 쓰는 편이다.


대화 속에서 재민은 그저 평범한 여자 같다가도 순간순간 너그러움을 드러내곤 했다. 이어, 열심히 사는 삶을 보는 게 좋다는 반면, 자신은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녀에게 열심히란, 정해둔 목표를 향해 효율적으로 매진하는 것. 체계가 꽉 잡힌 낭비 없는 삶이라고. 그녀는 점차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고 매력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사는 삶, 목표를 정해둔 삶이 아니라면, 본인은 철저히 현재에 충실한 사람인가. 

-그런 것 같다. 나는 오늘을 무사히 사는 데 만족한다. 그래도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은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있으니까. 

*그 정도면 열심히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나는 너무 생산적인 삶에 대해서는 따분하고, 내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 적당히 노력하는 그 정도가 좋다. 

*본인이 추구하는 적당한 삶은 성취하는 것 역시 많지 않을 텐데, 욕심이 없는 건가. 

-맞다. 공부할 때도 나는 85점 정도가 좋았다. 노력 대비 결과가 늘 비례하지 않을 테고, 완벽이란 불가능한 거라 생각했다. 85점 만큼의 노력과 결과면 내겐 충분하다. 

*만약 85점도 안 나오면?-그럼 다음엔 조금 더 노력한다.

*85점 이상이 나오면? -오 그러면 땡큐! (웃음)


재민의 ‘85점 이론’은 꽤나 신선했다. 그녀는 어느 정도면 만족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그것도 일찍부터 알았다. 주도적으로 공부하거나, 적극적으로 욕심내지는 않아도 스스로 기준이 있었기에 수동적이지 않고 늘 만족했던 것이다. 이는 높은 삶의 만족도와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를 뜻했다. 학창시절 내내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던 재민은 마침 새로 시작한 일에 무엇보다 흥미를 느끼는 중이었고, 이제 우리는 이어질 대화에서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재미있어서인지, 일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렇다. 일단 재미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다. 또, 엄밀히 말해 비서가 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지 않나, 다른 사람의 일이다 보니, 대충할 수 없고 더 큰 책임을 느낀다. 

*그렇다면 묻겠다. 지금껏 85점의 선에서 살아온 본인은 이 일에 어떻게 임하고 있나. 도전적인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맞다. 지금껏 살아온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했다시피,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일이고, 내 능력에 그 사람의 업무 치가 달려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히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껏 나는 적당한 노력만 해온 사람이지만, 그건 내 최대치가 아니었다. 또,한계라는 것은 스스로 정하는 거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만큼, 필요한 노력을 할 것이고 큰 부담은 없다.


나는 놀랐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첫 사회생활에 버거워할 것 같았고, 별다른 재미있는 게 없다고 했고, 지금까지 적당한 노력을 곁들여 노는 일에 더 열심이었기에, 그녀가 이렇게 당찬 포부를 밝힐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게 사실. 삶에 만족을 아는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최대치를 아껴두고 살아온 것이었다. 언젠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았을 때 비로소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될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지 않았을까. 바로 지금처럼.


재민은 지금 자신이 살아온 삶 이상의 것을 만나고 있다. 말하는 내내 그 흔한 경쟁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신기했다. 누군가에 관심을 두고 살피는 일, 지금 보이는 의지가 일시적인 것만 아니라면, 아마 그것은 그녀와 아주 잘 맞는 일일 것이다. 비록 서툴더라도 처음이란 원래 그게 정상이다.


*꿈은 무엇인가? -현모양처! (정말 고민 없이 튀어나온 대답)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객관적이고 심지가 굳은 사람. 

*이유는? -어떤 상황에든 객관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하고 싶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또,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가진 사람이길 원한다. 

*이상적인 미래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현모양처로서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 아무래도 챙겨주고 좋은 방향으로 가게끔 돕고 잘 만들어가는 게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하루빨리 연애를 해야겠다. 이상형은? 

-노력 중이다. 소개팅도 하는데 아직은 생각처럼 안된다. 자기 일에 비전을 가지고 성실히 임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남자가 멋있다. 

*곧 만날 수 있기를 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마냥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만 나눈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답변하는 재민과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힘들다는 하소연조차 경쾌하게 할 줄 아는 그녀였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일어나며 다음 일정을 물었더니 인터뷰와 시간이 겹친 MEET UP 모임에 못 간 터라 뒤풀이에 간단다. 그렇게 들뜬 뒷모습을 보내고 흡족했다. 재민은 정말 필요한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 비록 지금까지는 원하는 만큼의 85점으로 살아왔을지라도, 이제 삶에 있어 그 이상의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조만간 완벽이 아닌, 프로정신으로 100점을 향하는 그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 (SEP, 2015)


인터뷰, 글/ 황은비(olocbo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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