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기다렸더니 ‘결함 5종 세트’?

by 뉴오토포스트

품질 문제로 고역을 겪는 캐스퍼
전력 장치에서 집중적 문제 발생
이러한 품질 문제의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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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현대차

‘가성비 전기차’, ‘생애 첫 전기차’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2년여의 긴 기다림 끝에 고객 품에 안긴 현대자동차의 경형 전기 SUV '캐스퍼 일렉트릭'. 매력적인 가격과 실용성으로 보조금 고갈 사태를 일으킬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그 영광이 무색하게도 출시 1년 만에 끊임없는 품질 문제로 소비자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2025년 9월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5차례가 넘는 무상수리는 애타게 차를 기다렸던 초기 구매자들의 기대를 깊은 실망감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단순한 잡음이나 마감 불량을 넘어, 전기차의 핵심 구동계와 안전에 직결된 부분에서 문제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가성비라는 장점에 가려져 있던 품질 관리의 민낯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심장을 겨눈 결함들, 불안을 안고 달리는 오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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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유튜브 ‘쭈헤이’

캐스퍼 일렉트릭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가장 심각하게 지적되는 부분은 단연 전기차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전력 및 제어 장치의 결함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통합충전제어장치(ICCU)’ 관련 문제다. ICCU는 고전압 배터리와 12V 저전압 배터리의 전력을 모두 관장하고 충전을 제어하는 핵심 부품으로, 이곳에 문제가 생길 경우 주행 중 동력 상실이나 충전 불가라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V2L(Vehicle-to-Load) 기능 사용 시 내부 부품 고장으로 완속 충전이 불가능해지는 현상이 발견되어 1만 3천 대가 넘는 차량이 무상수리 대상에 올랐다.

냉각 계통의 문제도 연이어 터져 나왔다. 배터리와 구동 모터의 열을 식혀 최적의 성능을 유지하게 하는 냉각수가 누유되는 현상이 다수의 차량에서 발생한 것이다. 특정 기간에 생산된 1만 1천여 대의 차량에서 3방향 밸브의 내구성 부족으로 냉각수가 새는 문제가 확인됐으며, 일부 차량에서는 모터 쪽으로 냉각수를 보내는 워터펌프 자체의 결함으로 냉각수가 모두 유출되는 아찔한 상황까지 보고됐다. 계기판에 ‘에어컨 정비를 받으십시오’라는 경고등이 뜨는 것이 대표적인 전조증상이다. 이 외에도 브레이크 경고등이 수시로 점등되는 소프트웨어 오류, 배터리 관리 시스템 이상 등 안전과 직결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운전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언제 차가 멈출지 몰라 불안하다”, “차값보다 수리비와 마음고생이 더 큰 거 같다”는 식의 불만은 이제 온라인 동호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상이 되었다.

예고된 인재(人災)? 수출 우선주의와 미숙한 생산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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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현대차

이러한 총체적인 품질 문제의 배경으로는 여러 구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생산 물량의 90% 이상을 해외 시장에 집중하는 현대차의 ‘수출 우선주의’를 첫 번째 원인으로 꼽는다. 유럽과 일본 등에서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하자, 한정된 생산 능력을 수출 물량 대응에 쏟아부으면서 상대적으로 내수 시장에 공급되는 차량의 초기 품질 안정화 과정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충분한 테스트와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개선하며 품질을 높여가야 할 시기에, 물량 밀어내기에 급급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첫 전기차 위탁 생산이라는 점도 품질 확보의 어려움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GGM은 내연기관 캐스퍼를 성공적으로 양산하며 생산 능력을 입증했지만, 수많은 전자 장비와 고전압 시스템이 결합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생산 기술과 품질 관리 노하우를 요구한다. 생산 초기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충분히 걸러내지 못한 채 시장에 공급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기에 현대차의 소극적인 대응은 소비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현대차는 해당 문제들이 안전 운행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중대 결함은 아니라고 판단, 강제성이 있는 ‘리콜’ 대신 ‘무상수리’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주행 중 시동 꺼짐의 공포를 유발하는 ICCU 문제나 제동과 관련된 오류가 어째서 중대 결함이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잦은 무상수리로 인해 서비스센터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부품 수급마저 지연되면서 수리를 위해 몇 주에서 몇 달씩 차량 운행을 못 하는 2차 피해까지 속출하고 있다. 문제가 있어도 제때 고칠 수 없는 상황이 소비자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이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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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의 연이은 품질 논란은 ‘많이 파는 것’보다 ‘제대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가성비’라는 매력적인 가치는 기본적인 품질과 안전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현재 캐스퍼 일렉트릭은 소비자들의 신뢰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경쟁 모델인 기아 레이 EV가 안정적인 품질과 출고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현 상황은 K-전기차의 위상에도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현대차는 지금이라도 눈앞의 판매 실적에 연연하기보다, 발생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투명하게 밝히고 리콜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캐스퍼 일렉트릭이 ‘국민 전기차’로 자리매김할지, 아니면 ‘빛 좋은 개살구’의 대명사로 전락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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