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Euro NCAP
무서운 기세로 글로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 이들은 더 이상 ‘싸구려 카피캣’이 아닌, 뛰어난 기술력과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강력한 경쟁자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성장세 이면에 숨겨졌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 국영 자동차 기업 둥펑자동차의 소형 전기차 ‘박스 EV’가 유럽의 권위 있는 신차 안전성 평가인 ‘유로 NCAP(Euro NCAP)’에서 별 5개 만점에 고작 별 3개를 받는 데 그치며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 모델의 부진을 넘어, ‘중국산 전기차는 아직 안전을 믿을 수 없다’는 시장의 편견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 출처 = Dongfeng Motor Corporation
유로 NCAP이 공개한 충돌 테스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둥펑 박스 EV는 여러 평가 항목에서 심각한 안전 문제를 드러냈다. 먼저 차량 전면부가 비스듬하게 충돌하는 옵셋(Offset) 테스트에서, 차체 하부의 용접 부위 일부가 파손되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발견됐다. 이는 충돌 에너지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실내로 전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운전석 에어백의 압력이 부족하여, 충돌 시 인체 모형의 머리가 에어백을 완전히 뚫고 스티어링 휠에 직접 부딪히는 아찔한 장면이 확인됐다. 이는 운전자에게 심각한 머리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충돌 사고 발생 시 탑승객의 신속한 탈출과 외부 구조 활동을 위해 도어 잠금이 자동으로 해제되어야 하지만, 박스 EV는 일부 도어가 잠긴 상태를 유지하여 구조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박스 EV는 ‘성인 탑승자 보호’ 항목에서 고작 69%라는 매우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는 함께 테스트를 받은 르노의 신형 전기차 르노 5(별 4개, 성인 보호 86%)나, 이미 유럽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중국 경쟁 모델 BYD 돌핀(별 5개, 성인 보호 89%)과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유로 NCAP의 기준이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인 안전 설계 자체가 미흡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진 출처 = Euro NCAP
유로 NCAP 사무총장 미키엘 반 라팅겐은 이번 결과에 대해 “둥펑 박스 EV는 유럽 시장에서 경쟁하는 다른 소형 전기차들이 달성하고 있는 안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특히 성인 탑승자 보호 측면에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기대하는 유럽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냉정한 평가다.
이번 둥펑의 굴욕은 다른 중국 브랜드의 사례와 비교되면서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과거 중국의 체리(Chery) 자동차 역시 유럽 시장에 출시한 ‘오모다 5’ 모델이 유로 NCAP 테스트 과정에서 에어백 전개 관련 문제가 지적되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하지만 체리는 즉각적인 개선 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고, 결국 재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획득하며 안전성을 입증했다.
이는 중국 자동차 기업도 충분한 노력과 투자를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안전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사례다. 반면, 둥펑 박스 EV의 이번 결과는 중국산 전기차 내부에서도 여전히 큰 품질 및 안전성 편차가 존재하며, 모든 중국차가 BYD나 체리처럼 높은 수준을 갖춘 것은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Euro NCAP
둥펑 박스 EV의 유로 NCAP 별 3개 획득은 ‘가성비’를 앞세워 유럽 시장을 공략하려던 중국 전기차 업계 전체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고 첨단 기능이 많더라도,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번 결과를 계기로 둥펑자동차가 문제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시급한 개선에 나설지, 아니면 안전보다는 가격 경쟁력에만 집중하는 과거의 전략을 고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이제 ‘안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브랜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