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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표현 수단이자, 때로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자동차의 본질적인 가치인 안전과 실용성을 외면하게 될 때, 우리의 자동차 문화는 병들기 시작한다.
‘프라이버시’라는 명분 아래 시야를 포기하는 불법 짙은 선팅, 차량의 성능보다는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하차감’ 문화, 그리고 도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제로백(0→100km/h 가속 시간)’ 수치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 자동차 문화의 미성숙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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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로 위를 점령한 ‘검은 유리창’의 자동차들. 도로교통법상 자동차 선팅의 가시광선 투과율은 앞 유리 70% 이상, 운전석 좌우 옆 유리는 40% 이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법규를 지키는 차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법 짙은 선팅(틴팅)이 만연해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와 ‘열 차단 효과’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내부가 보이지 않아야 멋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 짙은 선팅이 운전자 자신은 물론, 도로 위 모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이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낮아질수록 운전자의 시야 확보 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야간이나 비, 눈이 오는 악천후 상황에서는 주변 사물이나 보행자를 인지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보행자나 다른 운전자가 차량 내부 운전자의 시선이나 수신호를 확인할 수 없어 상호 소통을 방해하고 예측 불가능한 위험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나만의 아늑함’을 위해 ‘모두의 안전’을 담보로 잡는 이기적인 행위인 셈이다. 미미한 단속과 처벌 수준 역시 이러한 불법 행위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자동차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신조어 하차감. 이는 ‘차에서 내릴 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주변의 시선’을 의미한다. 차량의 주행 성능이나 연비, 실용성 같은 본질적인 가치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태를 반영한다.
물론 자동차가 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성공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기능하는 측면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차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자동차를 ‘과시적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자신의 실제 필요나 예산과는 상관없이, 오직 남들에게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로 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지출하는 비합리적인 소비 행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좁은 골목길이 많은 도심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수입 SUV를 구매하거나, 실제 운전 능력과는 상관없이 고성능 엠블럼에 집착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결국 자동차는 ‘나를 위한 만족’이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그 과정에서 운전의 본질적인 즐거움과 실용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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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성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바로 ‘제로백’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이 수치는 오랫동안 자동차의 순발력과 가속 성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운전자들이 이 ‘제로백’ 수치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며 차량의 우열을 가늠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도심 제한 속도가 시속 50~60km이고, 출퇴근 시간 상습적인 교통 정체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도로 현실을 고려할 때, ‘제로백 3초’와 ‘제로백 5초’의 차이가 일상 주행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설령 그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도로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대부분 불법적인 과속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운전자들이 제로백 수치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동차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성능을 ‘단 하나의 숫자’로 단순화하여 비교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더 빠른 차 = 더 좋은 차’라는 원초적인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로백 집착은 자동차 성능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제로백 수치가 전부가 아니다. 코너링 성능, 제동 능력, 고속 안정성, 승차감, 연비 효율성 등 실제 운전 경험과 안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제로백이라는 단편적인 숫자에만 매몰되어 차량을 평가하는 것은, 마치 책의 두께만으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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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짙은 선팅, 하차감 중시, 제로백 집착. 이 세 가지 현상은 모두 자동차를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 수단’이라는 본질적인 역할보다 ‘과시와 경쟁의 도구’로 소비하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수치적인 비교 우위에 집착하는 문화가 도로 위의 안전을 위협하고 비합리적인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폼생폼사’의 껍데기를 벗고, 자동차의 본질적인 가치인 ‘안전’과 ‘실용성’에 더 집중하는 성숙한 자동차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법규를 준수하는 투명한 시야를 확보하고, 내게 꼭 맞는 크기와 성능의 차를 선택하며,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운전 그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나와 내 이웃 모두를 위한, 더 안전하고 건강한 자동차 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 개선과 함께, 불법 선팅 단속 강화 등 제도적인 뒷받침 역시 시급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