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년 전만 해도, 자동차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운전자의 불만 1순위였다. 길도 제대로 못 찾는 멍청한 순정 내비게이션, 라디오와 CD 플레이어가 전부였던 오디오. 차라리 중고 스마트폰 하나가 수백만 원짜리 순정 옵션보다 똑똑하다는 조롱이 쏟아졌다.
사진 출처 = BMW
하지만 현 시대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가장 멍청한 기계’에서 ‘가장 똑똑한 개인 비서’로 환골탈태했다. 이제는 단순히 길을 찾는 것을 넘어, 운전자의 기분을 맞추고, 스케줄을 관리하며, 심지어 운전자가 말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을 제안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사진 출처 = 메르세데스-벤츠
‘최고’라는 타이틀에 가장 먼저 불을 지핀 것은 단연 벤츠다. 2018년 처음 선보인 MBUX(Mercedes-Benz User Experience)는 “안녕, 벤츠(Hey, Mercedes)”라는 호출어로 시작되는 ‘자연어 인식’ 기능 하나로 시장을 평정했다.
과거의 음성인식은 “라디오 주파수 95.9”처럼 정해진 명령어만 알아듣는 ‘로봇’에 불과했다. 하지만 MBUX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문맥을 이해한다. 운전자가 “안녕 벤츠, 나 추워”라고 불평하듯 말하면, 시스템은 “온도를 1도 올릴까요?”라고 되묻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에어컨 온도를 24도로 조절하고 앰비언트 라이트를 붉은색으로 바꾸는 ‘감성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나 배고파”라고 말하면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추천하고, “우울해”라고 말하면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는 식이다. 이는 자동차를 ‘조작의 대상’에서 ‘소통의 파트너’로 격상시킨 첫 번째 사례다. 특히 화려한 그래픽과 결합된 MBUX의 감성적인 접근은, 복잡한 기계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에게 ‘프리미엄이란 이런 것’이라는 확실한 경험을 선사하며 럭셔리 인포테인먼트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출처 = 현대차
벤츠가 ‘감성적인 비서’라면, 현대차그룹의 ccNC(Connected Car Navigation Cockpit)는 ‘가장 실용적인 스마트폰’에 가깝다. 2023년 그랜저를 시작으로 본격 탑재된 ccNC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바로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의 완전한 대중화다.
과거에는 내비게이션 지도 업데이트 한번 하려면 USB를 다운로드하거나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하는 ‘연례행사’였다. 하지만 ccNC는 스마트폰이 밤새 스스로 업데이트되는 것처럼, 차량의 모든 기능을 무선으로 항상 최신 상태로 유지한다.
이 OTA의 범위는 충격적일 정도로 넓다. 단순히 내비게이션 지도나 인포테인먼트 기능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차량의 주행 성능,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서스펜션 제어 로직, 심지어 브레이크와 에어백 같은 안전 시스템까지 OTA의 영역에 포함된다. 즉, 5년 전에 산 내 차가 오늘 아침 업데이트 한 번으로 ‘신차’의 기능을 갖게 되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차는 사는 순간 구형이 된다’는 낡은 공식을 깨부수고, 차량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ccNC의 전략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첨단 기술’로 평가받는다. 차가 스스로 진화한다는 개념을 대중화시킨 일등 공신이다.
사진 출처 = BMW
벤츠가 ‘말귀를 알아듣는 비서’이고 현대차가 ‘스스로 업데이트하는 폰’이라면, BMW의 최신 iDrive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집사’에 가깝다. 1990년대 복잡하기로 악명 높았던 1세대 iDrive의 오명을 완전히 씻어낸 것이다.
BMW iDrive의 핵심은 AI 기반의 ‘학습 기능’이다. 이 시스템은 운전자의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조용히 학습한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매일 아침 특정 구간에서 창문을 여는 행동을 반복하면, 며칠 뒤부터는 그 지점에 접근할 때 차가 먼저 "창문을 여시겠습니까?"라고 제안한다. 특정 시간에 항상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그 시간이 되면 “아내에게 전화할까요?”라고 묻는다.
이는 운전자가 필요를 인지하고 명령을 내리기 전에, 시스템이 먼저 운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제안하는 ‘선제적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수많은 기능을 복잡한 메뉴 속에 숨겨두고 찾아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기능을 가장 적절한 순간에 꺼내주는 이 ‘개인화’ 기능은 ‘운전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하는 BMW의 철학과 맞물려, 운전자가 오직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사진 출처 = BMW
이처럼 2025년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과거의 단순한 ‘기능 모음’에서 벗어나, 제조사의 철학을 담은 ‘AI 개인 비서’로 완벽하게 진화했다.
이제 이 경쟁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미래의 AI 시스템은 실내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운전자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까지 분석한다. 운전자가 하품을 하거나 눈을 자주 감으면 ‘졸음운전’을 강력히 경고하고,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받은 기색이 보이면 기분에 맞는 음악이나 앰비언트 라이트를 추천하는 ‘감정 교류’의 단계로 발전 중이다.
‘엔진 마력’ 경쟁이 끝나가는 지금, 운전자의 마음을 먼저 읽고 감정까지 교류하는 ‘AI 비서’의 똑똑함이 미래 자동차 시장의 진정한 승자를 가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