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경영진 교체와 함께 '대숙청' 돌입

by 뉴오토포스트

재규어, 결국 칼 빼 들었다
타타 출신 신임 CEO 등판
기존 오명 지우고 부활할까


영국의 자존심이자 우아한 디자인의 대명사였던 재규어. 하지만 최근 이 브랜드가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재규어의 상징인 ‘리퍼’ 로고를 없애버리고, 난해한 폰트와 기괴한 색감, 그리고 자동차인지 가전제품인지 알 수 없는 ‘Type 00’ 콘셉트카를 공개하며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던 재규어는 죽었다”, “브랜드가 스스로 자살골을 넣었다”는 비난이 쇄도했고, 100년 가까이 쌓아온 헤리티지를 헌신짝처럼 버린 대가는 참혹했다.

Jaguar-Type_00_Concept-2024-1280-e5a2ae7114cfa3b8626640b7f00848ec4e.jpg 사진 출처 = 재규어

그런데, 이 난해한 ‘파격’을 주도했던 핵심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재규어·랜드로버의 디자인을 총괄하며 ‘신’처럼 군림했던 제리 맥거번이 보안 인력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성공의 아버지’에서 ‘괴작의 주범’으로

98238_222039_3230.jpg 사진 출처 = 재규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충격은 퇴출당한 인물이 제리 맥거번이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 21년간 JLR 그룹의 디자인을 이끌며, 레인지로버 이보크, 벨라, 그리고 신형 디펜더까지 연달아 히트시킨 ‘미다스의 손’이었다. 파산 직전의 랜드로버를 구해내고 오늘날의 럭셔리 SUV 브랜드로 만든 일등 공신이자,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하지만 영광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의 최근 행보는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브랜드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독선’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최근 공개된 재규어의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Type 00’ 콘셉트카는 그 결정타였다. 웅장한 그릴과 날렵한 헤드램프 대신, 뭉툭한 네모 상자에 바퀴만 달아놓은 듯한 디자인은 “재규어의 우아함은 어디 가고 핑크색 비누가 남았냐”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맥거번은 최근 사무실에서 보안 인력의 안내를 받아 짐을 싸서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통상적인 임원의 은퇴나 사임과는 거리가 먼, 명백한 ‘경질’이자 ‘강제 퇴출’의 모양새다. 그가 주도한 파격적인 리브랜딩이 시장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자, 본사가 책임을 물어 그를 불명예스럽게 쫓아낸 것이다. 21년간 브랜드를 이끌어온 전설적인 디자이너의 최후치고는 너무나도 비참하고 초라한 결말이다. 이는 아무리 과거의 공로가 크더라도, 소비자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브랜드의 본질을 훼손하는 디자인은 용납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CEO까지 물갈이…타타모터스의 ‘친정 체제’ 구축

98238_222034_2724.jpg 사진 출처 = 재규어

맥거번의 퇴출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JLR 그룹의 수장이었던 에이드리언 마델 CEO 역시 은퇴를 선언하며 회사를 떠난다. 마델 CEO는 맥거번과 함께 재규어의 전동화 전환과 리브랜딩 전략인 ‘리이매진’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인물이다. 디자인 총괄과 경영 총괄이 동시에 물러난다는 것은, 기존 JLR 경영진이 추진해 온 전략 전체가 ‘실패’로 규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빈자리는 JLR의 모기업인 인도 타타모터스 출신의 PB 발라지가 채운다. 타타모터스 그룹의 최고재무책임자였던 그가 JLR의 신임 CEO로 선임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JLR의 독자적인 경영을 존중해 왔던 타타 그룹이, 이제는 직접 경영의 고삐를 쥐고 강력한 구조조정과 쇄신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숙청’이 재규어의 잘못된 방향성을 바로잡기 위한 필연적인 조치라고 분석한다. 재규어는 2025년부터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겠다며 내연기관 모델 생산을 모두 중단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캐즘)와 맞물려, 신차 공백기는 길어졌고 브랜드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은 리브랜딩마저 대중의 외면을 받자, 타타 그룹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 경영진은 맥거번이 남긴 ‘난해한 유산’을 수습하고, 떠나간 팬심을 되돌려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다시 포효해야 한다

JAGUAR_TYPE00_5.jpg 사진 출처 = 재규어

제리 맥거번의 퇴출과 경영진 교체는 재규어에게 있어 ‘위기’이자 ‘기회’다. 지난 몇 달간 재규어가 보여준 모습은 ‘파괴적 혁신’이 아니라, 그저 ‘브랜드 파괴’에 가까웠다. 100년 역사의 헤리티지를 부정하고, 다양성과 미니멀리즘에만 매몰되어 정작 자동차가 갖춰야 할 ‘멋’과 ‘성능’을 놓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시장은 ‘Type 00’과 같은 괴작을 폐기하고, 우리가 사랑했던 우아하고 날렵한, 진짜 ‘재규어’다운 디자인을 다시 내놓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제야 정신 차렸나"라는 대중의 비아냥을 "역시 재규어다"라는 찬사로 바꾸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브랜드의 본질을 되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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