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서원
내가 가진 것과 작가의 생각에 설렘을 더하면 빅뱅이 일어나고 전혀 다른 세상과 연결된다. 나는 그 경험을 줄리아 캐머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통해 발견했다. 책을 읽기 전과 후, 내 삶은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했다. 생활 전반의 모든 것이 ‘아티스트 웨이’의 선상에 올려졌고 지난 7개월 동안 하루하루가 조용하지만 강렬한 변신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티스트 웨이’를 읽은 후 모닝 페이지를 쓰며 나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간단한 물음에도 답을 달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불행한 삶이었다고 할 수는 없고 그날그날의 공을 받아치느라 정신없이 살아낸 원시형 인간이었다. 삶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고 사유의 시간도 없었다. 이런 질문에 딱 한번 노출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고민하다 내린 나의 답은 내가 살았던 환경이 콩나물시루 속 단체전과 같아서 나라는 개인이 존재할 수가 없었고 이런 질문지를 받는 것도 처음이며 대답이 낯설고 어색하다고 했다. 살아가는 어디쯤에서 한번 만이라도 물어봐 주는 이가 있었다면 나의 삶이 달라졌을까? 감사하게도 이번이 두 번째 물음이라 준비가 되어있다.
'그 일을 하기엔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 (p.239)
지금부터 내가 경계해야 할 문장이다. 그 말은 '그 일을 할만한 돈이 없어'라는 말과 함께 우리 내면에 웅크리고서 창조성 발굴을 가로막는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두려움과 맞서는 것을 피하기 위한 회피전략일 뿐이며 창조성이 막힌 사람들의 변명이라고도 한다.
나는 창조성이 꽉 막혀 있던 사람이었다. 60의 나이가 합리적 변명이 되어주기에 주저앉아도 되는 이해의 대상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했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왕성한 예술 활동을 한 '모지스 할머니'의 사례만 보더라도 나이가 많아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나 역시 인생 2막에 찾아온 삶의 여유를 나의 길을 찾아가는 곳에 쓰고 싶다. ‘아티스트 웨이’로 소박하지만 나다운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위해 나의 모든 창조성을 다 끌어들이고 있다.
‘하루하루는 어차피 행동하는 나날의 끝없는 도돌이표가 아닌가? 분명한 목표가 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얼마나 즐거울지 상상해 보라’. (p.242)
시작도 끝도 없이 지겨운 삶의 도돌이표를 반복해서 살아본 사람이라 새로운 시선이 절실했다. 솔직히 너무 진지한 삶은 재미가 없다. 즐거움이 없는 삶은 감옥이고 생물학적 ‘코마 상태’라고 생각한다. 삶의 시간이 누적된 만큼 나의 경험에는 나만의 분명한 색깔이 있을 것이다. 행동하는 하루 안에 글쓰기와 요리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배치하고 레퍼런스를 쌓고 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일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이것이 나의 70이 셀레는 남다른 이유이며 목표다. 인생 2막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작지만 확실한 사치의 즐거움’ (p.197)
신기하게도 ‘아티스트 웨이’는 자기 계발서를 못마땅해하던 나를 굴복시켰고 추앙하게 했다. 읽을 때마다 또 다른 창조성을 흔들어 깨워주었고 덕분에 글도 쓰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이렇게 내보이는 글을 쓰는 것에 스스럼없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불속에서 혼자 쓰고 버렸을 나의 소신 발언들이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이 같은 행위가 얼마나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글을 써본 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작지만 확실한 사치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작가의 생각에 나의 설렘을 더하여 글쓰기를 시작했더니 그 실행력에 가속도가 더해간다. 예전의 나로부터 분명한 빅뱅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전혀 다른 세상과 연결되었다. 모두 ‘아티스트 웨이’라는 연결 고리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