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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이 어디 있나요? 아니 조선의 그 유명한 경희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조선의 왕 숙종이나 영조가 이 사실을 알면 가슴을 칠 일이다. 경희궁 하면 떠오르는 것은 광화문 앞 제1 정부종합청사 뒤쯤에 있는 아파트인 '경희궁의 아침' 정도를 떠올렸다. 한데 그토록 자주 드나들던 서울시 교육청과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는 곳이 옛 경희궁 터라는 것을 알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정문인 흥화문 입구가 여느 궁처럼 분주하지도 번잡하지도 않아 한산하여, 이곳이 굳이 궁임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시끄럽고 분주한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다 한들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칠 공산이 크다. 이쯤 되니 경희궁에 미안함과 애잔함 그 중간 어디쯤 있는 느낌이다.
광해군에 의해 서궐인 별궁으로서 조선 후기 많은 왕들이 애용했던 곳이 바로 경희궁이다. 숙종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영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한다. 이후 고종의 경복궁 중건 공사로 많은 전각들이 해체되어 경복궁 중건에 사용되었고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중학교(광복 후 서울고등학교) 터로 활용되는 등 경희궁의 고난과 수난을 내려보던 인왕산 봉우리는 말없이 경희궁의 숭정전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후 경희궁의 여러 전각과 해체된 문들이 서울시 여기저기에서 다시 돌아갈 날 만을 기다리며 말없이 그 흔적들만이 헤매고 있다 한다. 경희궁 앞에 있는 구세군 건물 1층의 찻집 창가 바로 앞에 경희궁 금천교가 보인다. 이는 차를 마시는 이곳이 바로 경희궁의 정문이 있던 자리임을 알고 나니 경희궁의 해체가 더 실감 난다.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기다리고 기대해 본다. 경희궁의 전체 모습을 담아 그린 서궐도(西闕圖)에 나타난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될 경희궁의 모습을.
흥화문을 지나 숭정문 앞에서 숭정전을 바라보노라니 경희궁의 애환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지만 숭정전을 지키듯 둘러쳐진 인왕산 봉우리는 이곳이 하늘의 기운이 인왕산 봉우리를 타고 땅으로 연결되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왕의 궁이었음을 호령하듯 말하고 있다. 경희궁은 조선시대 여러 왕이 정사를 펴며 선정을 이루어왔으나 다른 궁들에 비해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궁이다. 후대에 찾아주는 이가 적은 것이 경희궁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으며 후대에 조선의 성왕으로 칭송받은 영조의 마음이 들리는 듯해 애잔함이 몰려온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조용히 산책하고 싶어질 때 조선시대 옛 궁을 찾는다면 최선의 선택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행히도 궁은 그리 멀지 않아서 찾아가기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에는 조선의 4대 궁이 있다. 조선시대 왕들의 호기와 한기가 함께 서려 있는 곳이다.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나 그저 훌쩍 걷고 싶어질 때는 궁을 찾아가 그 시절 왕의 삶과 생각을 더듬어보며 숱한 생각들을 묻고 또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궁에 가면 분주하다. 궁을 찾는 이들이 많아 늘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저 마음의 온도에 따라 훌쩍 걷고 싶어 찾아갈 때면 오랜 줄을 서서 기다림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 기다림 없이 마음의 온도를 온전히 그대로 유지하며 바로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경희궁이다.
경희궁의 숭정전 뒤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뒤꼍이 어수선하긴 해도 숭정문을 지나 숭정전 마당에 들어서면 조선 후기의 태평성대가 느껴진다. 4대 궁 중 가장 아름답다는 사방의 화랑을 따라 걷다 보면 복잡하고 심란했던 생각들의 갈래를 찾을 수도 있다. 해가 질 무렵 숭정전 앞 계단에 걸 터 앉으면 문밖 시끄럽고 어지러운 서울의 수많은 소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생각을 나에게 향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경희궁이야말로 줄리아 카메론이 좋아할 최고의 아티스트 데이트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