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머리카락
요즘도 TV를 켜면 여전히 머리숱이 풍성한 사람들이 주인공 역할을 도맡고 있다. 반면, 탈모가 있거나 대머리인 사람들은 대부분 코믹한 역할이나 조연으로 등장한다. 대머리 가발을 쓰거나, 탈모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개그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들이 로맨틱한 주인공이 되거나, 진지한 인생 드라마의 중심에 서는 일은 드물다.
최근에 본 영화들만 봐도 그렇다. 대머리 캐릭터는 주로 주인공의 친구나, 코믹한 조연으로 등장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영화이던 드라마던 대머리 배우들은 주로 악당이거나,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감초 역할을 맡는다. 반면, 주인공은 풍성한 머리숱을 휘날리며 액션을 펼치거나, 로맨스의 중심에 서 있다.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의 양이 곧 인생의 위치를 결정짓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에서는 브루스 윌리스, 제이슨 스타뎀 같은 탈모이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있긴 해지만, 일반적으로는 탈모인이 주인공을 맡게 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문 것 같다.)
과거 학창 시절 때도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끼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 머리숱 많다! 부럽다!" 하고 말하거나, 머리가 조금이라도 벗겨진 선생님을 두고 험담을 하는 일도 흔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탈모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 머리카락이 언제나 건강하고 풍성하게 남아 있기를 소망했다.
사실 머리카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내 병원을 오픈하고, 본격적으로 탈모 환자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머리카락이 단순히 미용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 그리고 삶의 질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느꼈다.
진료실에서는 가끔 예상치 못한 유머가 오간다. 한 번은 대머리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선생님, 제 머리카락 찾으면 사례금 드릴게요."라고 말해 피식 웃었던 적이 있다. 나도 그 말에 웃었고, 진료실 안에 있던 간호사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음 속에서도 그가 느끼고 있을 자그마한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료실이 꽤나 밝아졌다.
우리 집안에는 탈모 가족력이 있다. 아버지도 큰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이마가 넓어졌고,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싶었다. 나 역시 30대 즈음부터 탈모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현재는 탈모약을 복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늘어지는 머리카락을 보고 '설마' 했지만, 어느새 사진 속 내 모습에서 점점 두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렇게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내가 탈모에 대한 일을 하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머리카락을 연구하고,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끔은 진료실 안에서 소소한 유머들이 주는 힘을 느끼기도 한다. 코미디언이든, 주인공이든, 그저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머리카락은 그 자체로 우리 삶에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흥미로운 주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도 제이슨 스타뎀, 브루스 윌리스처럼 탈모인이 주인공을 맡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대머리인 배우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고, 대머리 캐릭터가 인생의 깊이를 보여주는 드라마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본다. 그날이 오면, 머리숱이 아닌 그 사람의 진짜 매력과 이야기가 스크린을 채우게 될 것이다. 탈모인도 당당히 주인공이 되는, 진짜 주인공의 시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