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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빠질수록 머리는 가벼워지는가?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Mar 03. 2025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머리카락이 빠질수록 머리는 정말로 가벼워지는 걸까? 물리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음도 함께 가벼워질까?

탈모를 치료하는 일을 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왔다. 탈모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거울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또 다른 사람은 모자 없이는 외출을 하지 못한다. 한 환자는 탈모가 진행된 후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다가 조명 아래 자신의 머리카락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머리숱이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탈모를 계기로 삶이 가벼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환자는 아침마다 스타일링하느라 거울 앞에서 보내던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차라리 머리를 밀어버리니 시원하고 좋더라고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요." 

그의 말에는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어쩌면 머리숱이 줄어들면서 머릿속 잡다한 생각들도 함께 가벼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환자는 탈모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머리숱이 곧 내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줄어들고 나니,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지 않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더 중요한 것들을 고민하게 됐어요. 사람들이 내 머리카락보다 내가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머리카락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말로 몸이 가벼워진다는 뜻일까? 머리카락의 총무게를 계산해 보면, 사람의 머리카락은 평균적으로 약 10만 개 정도이며, 한 올의 무게는 약 0.6mg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머리카락 전체의 무게는 약 60g. 이는 계란 한 개 정도의 무게와 비슷하다.

이론적으로는 체중 감량이 되는 셈이지만, 과연 60g 줄어든다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복싱 선수들이 체급을 맞추기 위해 삭발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g이라도 줄이기 위해 사우나를 하고, 물도 거의 마시지 않는 선수들에게는 60g도 꽤 중요한 차이일 것이다. 선수들에겐 머리카락이란 단순한 장식일까, 아니면 덜어내야 할 불필요한 짐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카락을 단순한 '털'로만 볼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모든 탈모인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의 상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  "형님, 모발이식 생각 없으세요?"라는 권유를 받거나, "언제부터 진행되신 거예요?" 같은 질문을 듣기도 한다. 어색하게 웃으며 넘기려 하지만, 그 순간 머리 한쪽이 묵직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것은 정말로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쥐고 있던 불필요한 집착과 고정관념을 내려놓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탈모로 인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환자들에게 종종 묻는다. "탈모가 인생을 많이 힘들게 했나요?" 처음에는 당황하다가도 곰곰이 생각한 후, 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답한다. "아니요, 생각보다 그렇진 않아요."

결국, 머리카락의 유무는 우리의 삶을 정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이다. 머리카락이 빠질수록 머리는 가벼워지는가? 그 대답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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