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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honeymind Jun 06. 2023

바운더리, 나를 보호하는 선

부제: 관계의 재구성을 위한 책 <관계를 읽는 시간>



2018년쯤인가, 헨리 클라우드의 <관계를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접하고 인생의 많은 것들을 회상해 보며 '자기 객관화' 속 '자기반성'의 시간을 통해 내가 함부로 넘었던 선들을 되돌아본 시간들이 있다.


그렇게 '그 선을 함부로 넘지 않게끔 나부터 노력해야지'라고 다짐했고, 나는 그 개념에 대한 깨우침을 바탕으로 칼럼까지 썼던 작자였지만, 참 우습게도 남들이 넘어오는 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선을 긋지 못했던 적, 나 또한 남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으며 그들의 영역을 존중하지 못하고 실수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무언가 깨달아도 그것을 고쳐나가기 위한, 혹은 적용해 나가기 위한 과정 속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은 피할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 말하며 나를 위로해 본다).  


당시 그 책을 읽고, 이런 책이 한국에서도 꼭 대중화되어 바운더리에 대한 개념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가 보아온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라는 이름 속 집단주의 아래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함을 참 중요시하는, 다름과 자기 분화를 지지하지 않는 사회로 구성되어 '바운더리'라는 개념을 찾아보기 힘든 곳인데, (부모에게 착취당하면서도 그것이 효도인 줄 알거나, 의리 혹은 정이라는 단어로 관계를 묶어두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희생하길 바란다던가, 회사상사의 말이 틀리거나 생각이 달라도 "No"라고 말할 수 없는..) 이 개념이 과연 널리 알려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함께 들었다.


그 책을 번역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바운더리’라는 개념에 꽂혔던 나는, 한국서점에서 정신과의사 문요한 님의 <관계를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우리가 관계 속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건강한 바운더리'란 무엇인지 한국어로 잘 전달하고 있었다. 그의 책을 공유하기 위해 요점을 간추려 나누어 보자면:



'바운더리'란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해 주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이며, 각각의 관계마다 건강한 거리가 다르다고 한다. 자아의 진짜 모습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바운더리라는 형태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1. 관계조절력 - 관계의 깊이를 조절하는 능력:

대상과 친밀도에 따라 그 깊이와 거리를 조율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들의 바운더리는 유연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되 합리적인 의심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더 깊이 교류하고 관계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2. 상호존중감 - 따로 또 같이:

자기 존중감뿐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기에 상호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들은 자신의 자아중심성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상대는 싫어할 수 있다는 것, 상대의 나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임을 알고 있다.

3. 마음을 헤어라리는 마음 -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

상대의 마음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이들은 정서적으로, 인지적으로 공감할 줄 안다. 상대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위로와 친절을 베풀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삶을 책임지려 하거나 휘두르는 듯 가르치며 컨트롤하지 않는다. 이들은 상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려할 줄 알고, 상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알맞은 선에 맞게 노력과 친절을 베푼다.

4. 갈등회복력:

이들은 갈등을 풀어냄으로써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이들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시 연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갈등에 회피해 버리지도, 이기려들 지도 않는다. 먼저 나서서 갈등을 풀려고 하며, 비교적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5. 솔직한 자기표현 - 과장된 두려움 버리기:

상대를 배려한 부드러운 솔직함을 표현할 줄 안다. 자기주장과 거절할 때는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은 거절을 할 때도 정중함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기에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인간관계에서 필요 이상 매달리지 않으며 혼자서 기쁨을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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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더리 크로서: 상대의 동의 없이 그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하는 자
#바운더리 가더: 상대의 접근을 계속 경계하는 자


그리고 처음 이 단어를 접한 지 5년이 흐른 2023년, 지금 나는 나의 선을 다시금 재정비하며 더 건강하게 구축해 나가는 프로세스 중에 있다. (그렇게 건강한 바운더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단 한 번에 만드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내향형과 외향형이 딱 반반 섞여있는 나는, 사실 나가서 사람들 만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을 인정한다. 지인들을 만나 깔깔거리며 즐거운 대화들로 기쁨과 에너지, 더 나아가 좋은 아이디어와 많은 도움을 받았고 분명 의미 있는 릴레이션십을 형성하고 만들어 나갔다. 그 좋은 인연들이 현재 옆에 있음에 참 감사하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온전히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뒤로한 채 관계에 얽매였던 시간들도 참 많았다. 사람들의 부름에 거절하지 못하도 나가 흘려보낸 시간들, 순간적으로 나의 공허함을 채우기 급급했던 시간들, 진이 다 빠질 나의 모습이 명백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감정, 그리고 거절감을 앞세워 남의 부탁을 제대로 거절하지 못했던 적-- 그렇게 나보다 남을 더 우선시하는 선택을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례한, 선을 넘는 질문들에 몇 초 동안 벙 쪄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던 적도 있다. 그렇게 어버버버 하며 대답을 해놓고 집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 보면서 거슬렸던 질문들에 대답해 버린 나 자신을 더욱 미워했던 적도 있다.


그리고 2023년, 나는 나를 보호하는 법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나의 영역을 건강하게 ‘재건축’ 해 나가는 과정 속에 있다:


내가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괜찮은 정도까지만 남을 돕는 것에 시간 할애하기(남의 아픔도 들어주고 공감하는 시간도 만들되--나의 정신건강과 체력건강이 먼저임을 인지하기), 내 영역을 침범하며 자신이 맞다 내가 틀렸다 하며 왈가불가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에너지 쏟지 말기, 나 또한 남에게 내 생각을 주입하기보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기, 그들의 삶에 과하게 감정이입하지 말기. 또한, 모두 다 만날 수 없고, 모두 다 챙길 수 없고, 나에게는 제한된 시간이 있음을-- 나를 위한 루틴이 먼저임을 되새기기. 정중하게 거절하는 법 배우기, 혹여나 살아가며 이런 저런 거절을 당해도 그것들이 결코 나의 자존감을 흔들 수 없다는 것 등. 그렇게— 나를 우선시 두어도 괜찮다는 것, 절대 잊지 말기.


인간관계에서 나만의 선을 아주 진하게 그려 벽을 쌓고 살라는 포인트도 아니고, 아무도 나에게 범접하지 못하도록 항상 내 생각만 앞세워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포인트도 아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통해 신뢰를 쌓고 사업 아이디어도 얻고, 좋은 사람들도 알게 되고, 서로가 힘들 때 도움도 주고받으며 서로의 양분을 키워나가게 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인생을 결코 혼자일 수 없기 때문!) 하지만 관계를 쌓아나갈 때에 나의 영역을 남으로부터 적당거리에 두고 나를 보호할 줄 아는 법, 그리고 나부터 남의 영역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며 존중하는 법을 아는 것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밸류 중 하나이자 가장 어렵고도 아름다운 미학 중 하나라 생각된다.


관계 속 가장 필요한 나의 바운더리 그리고 당신의 바운더리. 그 밸류에 대한 깨우침. 그 선이 불분명해 가까운 것은 결코 찬양할 것이 아님을, 그것을 당신을 알고 있는지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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