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나은 Apr 30. 2024

슈퍼 샐러드라구요? 아니, Soup or Salad?

English became my insecurity

말하자면, 나의 영어는 나쁘지 않았다. 뭐, 미국인이랑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래도 왠간한 의사소통 정도는 되는 수준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학창시절의 내신 영어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은 거의 늘 백점이나 90점대를 유지했었고, 수능에서도 1점짜리 한 문제를 틀려서 아쉽게도 만점은 아녔지만 1등급을 받았었다. 주변에서 발음도 꽤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늘 있어 왔다. 내가 하고 싶은 영어의 수준이 원어민처럼 유창하고 싶다는 정도가 아녔고 영어를 좋아하는 이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적당한 핑계가 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해 지자면 영어를 본격적으로 탐구해 본 적이 없다. 윤선생 영어교실 테이프로 영어를 공부했던 국내파로서,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 정도만 해도 되었다. 그 때 그 시절, 한국에서는 말이다.






처음 영어로 깨진 것은 호주에서였다. 엄마의 융통성 없는 엄격함이 점차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에 자리 잡아가는 것이 싫어져서 대학1년을 남겨두고 휴학을 결정하고 반 년 정도 열심히 돈을 모아서 스스로 떠난 고생길, 돌이켜 봐도 내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그 소중한 시간 동안에 나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겪었다. 호주의 영어 발음은 내게 익숙한 미국의 영어 발음과 다른 부분이 많아서 쉬운 단어도 잘 못 알아차릴 때가 많았다. 시드니에서 아침 뉴스를 시청하다가 깜짝 놀랐던 것도 기억난다. "해[하]브 어 굿 다이" 이러는데, 내 귀를 의심했었던 기억. 사실은 "해브 어 굿 데이(Have a good day!)였지만, 'a'발음이 [ㅔ]가 아닌 [ㅏ]에 가까운 소리가 난다는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나는 방금 들은 것이 맞나 싶어서 뉴스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봤던 것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잘 죽으라는 소리야 뭐야 이러면서..

이 후에도 영어를 잘 못알아들어서 깜짝 깜짝 놀라거나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표현이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아서 말문이 막힌다거나 용기내어 기껏 생각해서 말을 했건만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는 "외국인"들과 눈을 마주하는 등의 경험들이 계속되었다. 이 경험들이 늘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모든 경험들이 나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 줬다. 아프니까 청춘이겠지 라는 마음으로.






캘리포니아의 영어 발음은 내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익숙한 발음이다. 나로서는 '표준 발음'인 느낌이랄까. 나의 짝꿍은 미국 동부 출신이지만, 그 어떤 도드라진 액센트도 없고 미끌거리고 부드러운, 흔히 말하는 버터 발음을 가진 캘리포니아 억양의 미국인이라서 그의 영어는 나로서는 익숙하고 편안했다. 캘리포니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그래서 제법 편안하게 영어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한국어를 할 때와는 세상 다르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대의 말에 남다른 집중력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긴 했지만.



그와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을 하던 날.

일식집이었고, 각자 본인이 먹을 것을 주문하는 미국식 방식대로 그가 주문을 마친 후 내가 주문을 하던 중이었다. 생김새는 나와 같은 동양인이지만, 그저 토종 미국인일 수밖에 없는 발음으로 내 주문을 받아주던 웨이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적어도 그 때의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Super Salad?"


순간, 얼마나 사이즈가 크길래 슈퍼 샐러드라는 걸까 싶었던 나는

"Yes!"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내 대답을 받아 적는 대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한 번 내게 똑같이 물었고,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내가 뭘 잘못 알아들은걸까? 뭐지? 뭐지?


맞은편의 그가 웨이터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Soup, please."


웨이터는 알았다고 답하고는 우리의 메뉴판을 받아들고 자리를 떠났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슈퍼 샐러드'라고 생각했던 그 말이 사실은 수프와 샐러드 중 어떤 걸로 드시겠냐고 묻는 "Soup or Salad?"였다는 사실을. 휴, 이렇게 글로 쓰면 쉽고 쉬운 단어이건만, 이걸 못 알아들었다니. 어려운 말였다면 못 알아들은 나에 대한 적당한 합리화가 가능했겠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나 쉬운 단어였고 이런 걸 못 알아들은 것이 부끄럽고 화가 나서 두 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짝꿍이 내게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핀잔을 주거나 눈치를 준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 쥐구멍을 찾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고작 이까짓거를 못 알아들어서 '외국인'임을, '이방인'임을 티를 낸 것이 싫었다고 해야하나.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됬던 어느 날 일어났던 일이다.

이 때부터였겠지, 이런 아주 자잘하고 소소한 이벤트들은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내 영혼을 좀먹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웃으면서 덤덤히 말할 수 있지만.



간단한 주문이더라도 긴장을 하곤 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 것과 같은 당연해 마땅한 일상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아지자,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공부가 되었다. 영어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삶의 전반적인 모든 것들이, 내 집에서 샤워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욕실마저 한국이랑 다르니까- 당장 저녁을 만들고 차리는, 집 안 청소를 하는, 티비를 보는, 그 모든 것들이 배워가고 익혀가야 하는 것들이었다. 거의 서른,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뻐기기 시작했더니, 이제 좀 어른이 되어 내 삶을 책임질 수 있게 되었으니 하겠다고 마음먹고 한 결혼이었건만 이건 뭐,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감히 어른이 되었구나 싶은,

학창 시절처럼 과목마다 선생님이 계시고 내게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알려줬으면 좋겠다 싶은,

자꾸만 숨어 버리고 싶은,

이러다 저절로 알게 되고 나아졌으면 하는 그런 간절한 소망들.




그렇지만 삶은 내게 거저 주지 않았고, 조금더 솔직해 지자면 나 또한 거저 먹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 아닌가. 이럴 정도까지 몰랐다고 후회할텐가, 이럴 정도지만 이 정도는 내가 해나갈 수 있다고 고개를 들고 가슴을 필텐가,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는 일이었다. 이 길은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한 적 없는 길이었으므로, 이 길은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고 선택한 길이었으므로.







아침이면 샤워를 했다.

한국에서는 굉장한 올빼미형 인간이었으나, 미국에 오고나서 부터는 아침 일곱시에 집을 나서는 그와 함께 일찌감치 아침을 맞이하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반찬을 만들 줄을 모르고 한인마트는 두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아침에는 시리얼이나 요거트, 토스트와 과일 등을 먹기 시작했다. 엄청 배가 풍만하게 부르지는 않아도 이런 아침식사도 꽤 나쁘지 않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걸었다, 나무와 들꽃들 사이에서. 산새와 오리들, 다람쥐와 토끼, 청솔모들과 자주 마주치면서.

햇살이 반짝이는 파아란 호수를 바라보면서. 솔바람을 느끼면서.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이래봤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늘 바쁘게 살았다. 일도 열심히 했고, 사람들도 열심히 만났다. 바쁘지 않으면 왠지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게을러질까봐 겁을 냈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해야지 직성이 풀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아무튼.






걷고 또 걷고 또 걸은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서서히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동안 가장 공부해 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나'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우나은, 

너 대체

뭐니?






우나은 글작가 일상

우나은 글작가 미국라이프[영상]

우나은 글작가 블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