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분노, 그리고 그림자의 무대 위에서

by 백건

소리와 분노, 그리고 그림자의 무대 위에서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이다. 무대 위에서 잠시 으스대다가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이며, 바보가 지껄이는 소리,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

— 셰익스피어, 『맥베스』

인류 문학사에서 이처럼 허무를 적나라하면서, 동시에 아름답게 표현한 대사는 드물다.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수작 중 하나가 오셀로와 더불어 맥베스라 생각한다. 맥베스가 최후를 앞두고 내뱉은 이 독백은 단지 한 폭군의 좌절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를 날것 그대로 무대에 올려놓고 고발한다. 인생은 빛이 아니라 그림자이며, 진리의 말이 아니라 의미없는 소음과 분노라는 선언. 그 안에는 각본대로 연기하고, 허세를 부리고, 제 할당량의 시간을 소비한 뒤 사라지는,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위상이 웅크리고 있다. 무대는 세계다. 그리고 우리는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는 조연이고, 때로는 대사조차 없는 배경 인물이며, 조명이 꺼진 뒤에는 잊히는 존재다.


맥베스는 전장을 누비고 왕좌를 쟁취하며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 손안엔 허무뿐이었다. 권력도 명예도 시간 앞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임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허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인생,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라는 자각은 좌절로 이어져야만 하는가? 아니면 그 자각 너머에 어떤 다른 자유의 가능성이 존재할까? 역설적으로, 이 허무의 인식은 우리에게 존재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를 준다. 의미를 바깥에서 찾지 않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무대의 각본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말은 소음에 불과하며 분노 또한 아무런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침묵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백치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로 선언한 자만이, 진실의 언어를 모색하고 자신만의 사유의 길을 열 수 있다. 삶이 어차피 그림자라면, 우리는 어떤 형태의 그림자를 남길 것인가? 희미한 실루엣이라도, 누군가의 각본이 아닌 자신만의 몸짓을 남긴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무대 위에서 가장 진실했던 장면일 수 있다. 맥베스의 절망은 인간 조건의 유한함을 시적이면서도 날카롭게 표현한다. 하지만 그 절망 위에서 우리는 다시 의미를 재구축해야 한다.


“인생에 정해진 의미가 없다면, 나는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가?”

"나는 어떤 배우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작가의 이전글인생은 고기서 고기고 치킨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