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7월이 끝나간다. 재택근무한지도 20주가 넘어가고 미국에 온지는 10개월이 넘어간다.
미국 스테이크 먹었다.
스테이크 먹은 게 뭐 큰 일인가 싶겠다만 내게 스테이크 먹는 일은 늘 차려입은 채로 먹거나 특별한 날에 먹거나 되게 많은 과정을 거쳐서 먹어야 하는 일이었다.
집에서 아빠가 스테이크 요리하시는 걸 즐겨하셔서 몇 번 먹었을 때만 해도 많은 준비 시간과 과정이 있어서 집에서 먹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구나 했었다. 하지만 너무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거에 놀랐다.
미디움 혹은 미디움 웰던으로만 먹던 내가 '미디움 레어'가 진리라는 말에 먹어봤는데 비린 맛도, 피 맛도, 질긴 맛도 나지 않아 진짜 신기했다. 역시 고기는 프래시가 최고야.
자전거가 없다.
코로나 시작하면서 미국 전역에 자전거 수요가 늘어 물건이 없다고는 들었다.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 언니도 자전거를 사려고 하니 모든 마트에 없었고 온라인으로 중고 사려고 해도 너무 비싸다고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사람들 정말.. 그렇게 자전거에 진심이라니.. 하하하 하면서 웃고 넘겼는데 아니 진짜 없잖아. 재고가 바닥날 정도였나 보다. 이렇게 싹쓰리일 줄이야.
한국에서 간식이 왔다.
코로나가 터지고 달고나 커피가 유행을 하던 시절... 아는 오빠랑 연락을 주고 받다가 '너도 달고나 만들어봤니?'의 안부를 받고는 '다이소 거품기가 있다면 나도 만들어 먹을텐데!!!'라고 하자 달고나 커피 유행이 다 끝나가고 나서야 다이소를 털어서 보내줬다. 괜찮다. 미국은 달고나 커피 아직 유행이니까. 하하.
더운 여름이다 보니 아폴로랑 말랑카우 같은거는 완전 녹아서 버렸지만 나머지는, 특히 맥주맛 사탕은 미국인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하기 최고인 것 같다. 맥주맛 사탕은 내 중학교 시절의 모든 것이니까...
비행기표를 샀다.
아시아나에서 811불 내고 비행기 표를 샀다. 예전부터 미국 오고 갈 때 아시아나만 타서 이왕 쌓아놓은 마일리지... 한 곳에 투자하자 해서 아시아나로 골랐다. 원래도 직항만 타기도 하지만 코로나에 경유는 정말 정말 아닌 것 같아 더 생각하지 않고 직항 편으로 바로 구매했다.
이상한게 미국 출발이라 그런가 달러로 계산되더라. 한국에 계신 엄마한테 한국 사이트로 들어가서 봐달라고 해도 달러로 뜨니까 말이다.
엄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행기를 중국에서, 홍콩에서 놓칠 뻔한 적이 있어서 표 사자마자 제일 걱정되는 게 비행기 놓칠까봐였다. 캬캬캬캬.
비행기 놓치는 것도 문제지만 코로나라서 더 집중 단속하고 하기 때문에 새로 생긴 프로세스가 많아져서 (예를 들어, 72시간 전에 뭐 등록해야 한다 이런거 말이다. 아직도 이해 못함...) 그런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안 먹어본 과일들을 샀다.
미국 올 때마다 사 먹던 게 체리였는데. 혹은 아보카도 흐흐. 한국에서 먹어보기는 했지만 너무 비싸기 때문에 비교적 매우 저렴한 미국에서 자주 사먹었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새로운 도전을 많이 두려워하면서 약간 즐기는 타입이라 익숙한 과일만 계속 먹었다. 돈 낭비하기 싫으니까!!
하지만 '곧 미국을 떠난다' 는 생각이 들자 (특히 비행기 표 끊고 나서 심적 변화가 좀 생겼다 흐흐) 새로운 과일을 먹어보자 했다. 코로나 시기에 무슨 엄청난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는가. 소소하게 과일이라도 도전하는거지!
그래서 이번에는 리치도 사보고 천도복숭아, 납작 복숭아 그리고 용과도 샀다.
체리는 항상 맛있었고 프래시 프래시
천도복숭아는 약간 케바케였다. 엄마가 골라준 복숭아가 최고..
납작복숭아는 사실 처음 먹어봤다. 한국에서 유행일 때.. 너무 비싸서 못 사먹었는데 훌쩍. 미국도 막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일과 야채를 못 먹는 인턴생으로서는 할만한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복숭아 씨앗이 진짜 작고 과육이 많아 즐겁게 2개씩 먹을 수 있었다. 잉? 하하.
용과는.. 진짜 도전이었다. 드래곤 후르츠 검색만 해봤지 사먹어 보지는 않았는데.. 미국에서도 싸지 않았다. 계산할 때 알았다. 하나에 거의 6불 줬으니...
흰색 과육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붉은 색도 있다고 했다. 엄청 달달할 줄 알고 먹었는데.. 아니 이게 뭐람. 마치 그냥 수분 보충을 위해 먹는 느낌이랄까. 물의 과일화? 사이사이 씹히는 재미..? 진짜 맛이 없었다. 무(無) 맛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인터넷에 검색도 해봤다. 원래 '건강한 맛'이라고 해서 안정을 찾고 다 먹었다. 건강한 맛이라고 안했으면 버렸을 거다... 예상과 너무 달라서 후하후하.
한국으로 택배를 보냈다.
택배 보낼 때 너무 정신 없이 보내서 사진은 한국에 도착한 사진으로 대체한다.
너무 많이 사서.. 겨울 옷을 도저히 캐리어에 담아 들고 갈 자신이 없어서.. 이전 인턴 행님에게서 택배 업체를 소개받았다. 여러 군데 알아보았지만 여기가 제일 가격도 부담없었고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이 써봤다고 하니 믿음이 가서 주소랑 사이트를 몇 달 간직하다가 이번에 직접 연락하고 방문해서 택배를 부쳤다.
택배 2개로 나눠서 코트와 패딩, 내복과 겨울 옷들, 1+1으로 사고 하나 남은 비타민들, 예전에 사두고 타이밍만 재던 선물들 등 담아서 보냈다.
매일 카톡으로 연락하지만 그래도 택배 안에 편지가 있는건 느낌이 다를 듯해서 편지도 썼다. 하하.
정확하지는 않지만 35lbs과 54lbs 정도씩 나갔고 총 92불을 냈다. 각 상자마다 과자 및 향신료가 있어서 일반 관세료가 붙어 3불씩 더 냈다... 토요일에 부쳐서 수요일에 제주에 도착했으니 진짜 정말 빠르다. 엄마랑 그냥 차라리 캐리어에 짐을 넣어 부치는게 더 부담도 없고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떠난다는 느낌이 든다. 비행기 표를 사고 택배를 보내니 진짜 1년이 빠르구나 싶고 벌써 여름이구나 싶다.
남은 인턴 생활도 집도 인간관계도 잘 마무리해서, 잘 담아서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