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나 감으나 회사를 걱정하는 직원
대개 그렇듯, 스타트업도 장점이 분명한 동시에 단점도 확실했다. 세상에는 아직 없는, 그 작은 빈틈을 파고들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멋진 우리’가 장점이었고 단점은 규모가 작을수록 가까워지기 때문에 경계가 흐려진다는 점이었다.
| 데일리 스크럼을 두 번씩 하기도 한다.
이전 회사에서는 데일리 스크럼을 하루에 2번 했다. 출근 후에는 오늘 무엇을 할지, 퇴근 30분 전에는 오늘 뭐 했는지, 잔업이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야근을 할지 말지를(법인카드 사용을 승인받기 위해) 나누는 시간이었다.
데일리 스크럼의 취지는 좋으나, 경험해본 바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인원이 5~6명도 제법 많을 텐데, 10명이 넘어가니 기본 30분이었다. 즉, 하루에 1시간이 스크럼에 할애된 것이다. 그만큼 할애해야 할 만큼 중요한 시간인 건 맞다. (추후에 다른 스타트업에서 데일리 스크럼을 정말 잘 활용해본 덕에 그 가치를 알게 됐다. 뒤늦게..)
하지만, 스타트업은 스크럼 intro checkin은 자기 이야기였다. 특히 월요일이면 주말에 뭐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강요는 아니지만 그런 게 무척 자유로웠고, 그렇기에 심리적으로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업무 외의 TMI가 심하니 야근을 앞둔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 대표의 고민을 나눌 수 있다.
위의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대표가 나에게 고민을 터놓을 때다. 스타트업은 알음알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규모가 작을수록 가족이나 친척 관계이거나,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이거나, 또는 입사 후에 급격히 친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문제는 그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대표의 고민이 내게도 전달된다는 것이다.
맡은 바 업무만 하고 싶은 나에게 HR, 투자, 운영 관련 이야기는 감당하기 벅찼다. 첫째,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서. 둘째, 내게 꺼낼 정도면 좋은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셋째, 조언을 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털어놓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너라면 누구 살릴래? 네가 보기엔 A가 월급만큼 일하는 것 같니? B회사(경쟁업체)가 이거 한다는데, 우리도 하는 게 맞을까?"
|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는 것과 대표가 주인의식을 갖는 것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사회 경험치가 낮은 나에게는, 그 이야기들이 딱 질문과 고민 그 자체로만 들렸다. 같은 고민을 하긴 하는데 고민의 깊이가 달랐다. 해결 방법도 모른 채로 막연히 걱정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결이 다른 고민들인데도(누구를 뽑을지, 업무 협업을 어떻게 높일지 등) 그게 전부 뭉쳐서 이렇게 된다.
'회사가 이렇게 어려우면 어떡하지?' '회사가 망하면 어떡하지?' '지금 이 상황이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그 상황이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하지?'
결론도 없는 막연한 걱정으로만 이어진다. 거기에 대표의 입장을 이해하다 보면 어느새 동정심이 들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대표도 아니었는데 대표처럼 걱정하고 있었다.
내 월급, 내 업무, 내 성장을 고민해야 할 시간에 투자 유치가 어떻게 되는지, 팀 분위기가 괜찮은지, 회사가 버틸 수 있는지를 걱정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경계가 흐려지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가까우니까 듣게 되고, 듣다 보니 같이 걱정하게 되고, 어느새 내 걱정인지 대표 걱정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근데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대표의 고민은 대표의 것이고, 나는 내 일을 잘 하면 됐다. 지금의 경험치가 그때 있었다면, 조금 더 지혜롭게 다닐 수 있었을까? 아마도. 대표의 이야기를 듣되 내 걱정으로 가져오지 않는 것, 가깝되 거리를 잃지 않는 것. 그게 스타트업에서 오래, 건강하게 버티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그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