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안 하지만 동거는 하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년 전, 뉴질랜드에서 산 지 3년 반 정도 되었을 때였다. 뉴질랜드에 산 이래 두 번째로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한국을 방문할 때에는 꼭 매듭짓고 싶었던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이는 부모님께 내가 현재 뉴질랜드에서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할 것이고, 그렇지만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순조롭게 전하고 오는 것이었다.
20대의 후반에 접어들면서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정의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더 기대하시기 전에 비혼을 하겠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것도 이 중의 하나였는데, 준비는 오랫동안 해 왔지만 막상 말씀드리기까지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세상 그 누구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받는 모습을 보고 싶겠는가? 나도 그 누구보다도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이상향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나의 이상향과 부모님의 이상향은 다르다는 것 또한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부모님께서 상처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듯, 부모님께서도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가 최대한 상처 받지 않으며 원만하게 살기를 바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내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이 경로를 택했을 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모님이 정의하시는, 그리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이상적인 삶"이란, 좋은 때에 남편과 결혼하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낳아 잘 기르며 오손도손 사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이와 같은 가족상들을 학교의 교재를 통해, 그리고 광고, 드라마, 예능프로와 같은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접하는 횟수를 세어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이 이상적인 가족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남자 주인공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연재해나 힘든 위기를 극복하고,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는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시나리오의 영화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과 같은 보편적인 가족상을 노래하는 동요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듣고 자랐는가?
하지만 개개인이 선호하는 음식이나 음악이 다르듯,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의 삶이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는 너무 행복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음악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다.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삶의 방식이 나에게는 "이상적인 삶"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자식을 기르며 사는 것이라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이상적인 삶"일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원하는 삶이 이와 다르다면, 나를 굳이 내가 원하지 않는 기준 안에 구겨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때 더 행복할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만약에 부모님께서 바라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행복이라면 내가 선택한 길이 보편적인 길이 아니어도 나의 궁극적인 행복을 응원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로 결정을 했다.
한국에 온 지 둘째 날 때쯤, 부모님과 기분 좋게 저녁을 먹은 후에 은근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최대한 침착하게 현재 교제하고 있는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할 예정이며, 하지만 결혼은 계획에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부모님: 그러면 결혼을 하겠다는 말이니?
나: 아니에요. 결혼을 할 계획은 없습니다.
부모님: 아, 알겠다.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거니?
나: 아니에요. 결혼식도,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부모님: 그런데 같이 산다고 하지 않았니. 그러면 결혼을 한다는 것 아니니?
부모님께 동거를 한다는 것은 결혼을 한다는 의미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결혼과 동거는 명백히 다른 것이고, 내가 선호하는 삶은 결혼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겠다고 선택을 한 것이다. 부모님께 결혼과 동거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해드렸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결혼은 다음과 같다.
결혼은 법률행위로써, 일종의 계약이다. 혼인에 합의한 당사자가 혼인신고를 하면서 법률혼은 시작된다. 이로써 부부, 남편, 아내 등으로 일컬어지는 계약관계가 형성되고 인척도 발생한다.
반면 내가 원하는 삶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으면 함께 살되, 법적인 의무도 없고 경제적으로나 비 경제적으로 서로의 삶에 법적인 통제권이 없는 삶이다.
설명이 끝나자 부모님께서는 여러 질문을 하셨는데, 물어보셨던 질문과 대답 중 몇 가지를 적어 보겠다.
Q. 결혼을 안 한다면 너와 남자 친구의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니?
A.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할 관계였다면 과연 그 사랑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Q. 결혼을 안 한다면 아기는 어떻게 가지니?
아기를 가지는 것은 의무가 아니고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남자 친구와 함께 산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앞으로 아기를 낳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뉴질랜드에서는 동거하는 커플 사이에서도 아기를 가지는 것이 흔하고 법적으로 등록하거나 키울 때에도 문제가 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셨고 나는 3-4시간에 걸쳐서 부모님께 내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유와, 동거와 결혼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방에 들어오셨다. 어머니께선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남자 친구네 가족한테도 잘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니?"
나는 "어머니, 저는 그냥 마음이 맞는 남자 친구랑 같이 사는 것뿐이에요. 지금 사는 삶과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답니다. 딱히 더 살 것도 없고, 딱히 남자 친구의 가족들에게 더 잘할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을 했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집안일은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는 일이므로 제가 할 일이 더 느는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어머니께서 나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울면서 말씀하시자, 나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조언이 어머니께서 살아오셨던 50여 년의 삶과 어머니께서 만나 오셨던 수많은 기혼 여성들의 삶을 거울 삼아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 장면은 매번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저릿하다. 어머니는 그날 밤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머니의 그때 그 마음을 나는 영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몇 달 전, 갑자기 동네 친구한테 결혼을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결혼을 안 했는데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냐고 물었더니, 길을 걸어가다가 우리 어머니를 만났는데 내 안부를 묻자 어머니께서 내가 결혼을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어머니께 그 이유를 묻자 어머니께서는 "너는 그러면 남자 친구랑 같이 사는데 그게 결혼한 게 아니면 뭐니? 엄마는 너무 복잡하다."라고 하셨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저녁 부모님께 동거와 결혼에 대해 새벽까지 설명을 드렸지만 우리의 대화는 쳇바퀴를 돌듯이 다음날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직도 가끔씩 아버지께서는 전화를 걸어 다음에 한국에 들어올 때 남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나를 평생 이해하지 못하실지도 모른다. 내가 옳지 못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나는 이제 부모님께 더 이상 자랑스러운 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부모님과 솔직하게 각자의 견해에 대해 대화를 함으로써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우리 부모님을 원망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경험을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선택지가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께 다음에 또 다른 친구가 물어본다면 결혼은 하지 않았고 동거만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라고 한다. 동거, 그리고 비혼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물론, 내가 뉴질랜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정들을 더 쉽게 내릴 수 있었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과 과정을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갈래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커버 사진 - Clem Onojeghu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