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리스 Craft판 전시와 마비노기
서울 덕수궁 덕홍전에서 진행된 보더리스 Craft판 전시 <시간의 마법사 : 다른 세계를 향해>가 12월 8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국가유산진흥원과 넥슨재단이 주최한 이 전시는 11월 19일부터 3주 간 진행되었다. 전통 공예의 맥을 잇는 국가무형유산 전승자와 주목받는 현대 공예 작가들이 바람의나라,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등 넥슨의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공예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의 테마는 빛. 장인의 손길로 공들여 완성된 작품은 빛과 그림자를 품고 덕홍전을 은은하게 채웠다.
마치 게임과 공예의 이색적인 만남을 상징하듯 단풍과 눈이 공존하던 덕수궁에는 많은 이들의 걸음이 이어졌다. 덕수궁을 찾은 관람객들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공예품을 살펴보며 지금 현재 가장 핫한 문화 콘텐츠 중 하나인 게임에 대해 다시 한번 바라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으며 전시를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덕수궁에 온 유저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게임을 만나고 반가워했다. 전시 관람과 함께 넥슨 퀘스트 완료 후, 아이템이 담긴 기념엽서를 품에 안은 그들은 덕수궁과 그 주변의 또 다른 풍경 속으로 걸음을 이어갔다.
밀레시안들은 작품 안에서 마비노기만의 감수성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마비노기 유저인 밀레시안들과 마비노기 개발진들은 전시장 모퉁이를 따뜻하게 밝히고 있는 ‘모닥불 조명’과 은은한 빛과 함께 부드럽게 흔들리던 ‘천원지방 매듭 조명’ 앞에서 오래 걸음을 멈췄다. 마비노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마비노기 IP를 활용한 멋진 공예품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밀레시안들은 작품 안에서 마비노기만의 감수성을 발견했다.
덕홍전을 찾은 어느 밀레시안은 “마치 모닥불 앞에 앉아 보내는 시간 같았다.”라고 말했다. ‘모닥불 앞에서의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매듭장 김시재와 금속공예가 김석영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게임팀이 인게임 아이템으로 ‘전통 초롱’을 제작하게 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마비노기 민경훈 디렉터와 매듭장 김시재, 금속공예가 김석영에게 밀레시안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마비노기’하면 떠오르는 것은 ‘판타지 라이프’ ‘낭만’ ‘모닥불’ ‘자장가’ 같은 것들이다. 보통의 RPG 게임들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와 무척 다르다. 전투 위주의 RPG와 달리, 음악, 패션, 요리 등 생활형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유저 간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하는 것이 마비노기만의 특징이다. 2004년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마비노기는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20년 동안 마비노기를 통해 쌓인 밀레시안의 추억의 밀도는 상상 이상으로 짙다.
마비노기를 개발한 김동건 데브캣 대표는 2019년 NYPC 토크콘서트에서 “마비노기의 상징인 캠프파이어 모닥불에는 아버지와 캠프파이어를 하며 고기를 구워 먹은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그래서 마비노기에는 ‘죽는다’라는 표현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죽는다’는 말이 없는 마비노기만의 판타지 라이프 안에서 밀레시안은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래하고, 교감하며 소통한다.
캠프파이어 모닥불은 마비노기 초창기부터
밀레시안 분들을 서로 이어 준 매개체입니다.
마비노기 민경훈 디렉터는 “캠프파이어 모닥불은 마비노기 초창기부터 밀레시안 분들을 서로 이어 준 매개체입니다.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마비노기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이며, 우리의 추억을 대변해 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라며 모닥불의 특별한 의미를 설명했다.
‘모닥불 조명’을 제작한 금속공예가 김석영은 그동안 주로 빛을 주제로 촛대와 조명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해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저에게 조명은 어두워지는 순간에 사용됨으로써 극적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며 따스한 휴식의 순간을 만들어 주는 매력적인 도구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게임을 모험과 여행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 봤고, 모험과 여행 중에 모닥불이 휴식과 충전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는 이른바 ‘불멍’을 통해 제가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과 충만감은 게임의 유저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지 않을까요?”
김석영 작가는 쉽지 않았던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스로 태워 빛과 열을 내는 모닥불을 조명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단순히 형태적인 완성도를 해결하는 방식만으론 이루어질 수 없기에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외적인 형태를 결정했고요, 이후 LED 전구, 안정기, 전선 등이 자연스럽게 배치했습니다. 몇 차례의 모델링 수정 과정을 거친 뒤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덕홍전 모퉁이에 고요히 자리한 모닥불 조명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귓가에 마비노기 OST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 다정한 선율이 들려오는 듯하다. 금속을 소재로 만들어졌음에도 차갑기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금속공예가 김석영의 손길과 밀레시안의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밀레시안들이 가장 오래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본 작품은 매듭장 김시재의 작품 ‘천원지방 매듭 조명’이다. 빛과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진 사각형과 원형 모양의 다양한 매듭 중 국화매듭은 켈트 신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마비노기 게임의 로고와 닮아, 밀레시안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의미로 이 작품은 우주와 자연의 조화, 균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모든 사물과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매듭장 김시재는 아들이 넥슨 게임의 유저라고 했다. 워크숍 때 각 게임의 디렉터가 직접 게임 IP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단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디렉터님들이 애정을 가지고 설명해 주는 만큼 엄마도 멋지게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어!"라고 했단다. 아들의 말은 매듭장 김시재가 작업에 더 진지하게 임하게 하는 큰 동기가 되었다.
“마비노기 민경훈 디렉터님에게 게임의 세계관에 대해 들으면서 제가 작업하며 담고 싶은 마음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른땅에 굴러 흙이 묻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축축한 바닷가 모래, 개울 바닥에서 굴러 반질반질해진 돌멩이, 얇고 부드러운 꽃잎을 만질 때 느끼는 촉감의 즐거움… 지금은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죠. 단순한 손놀림을 반복하며 오로지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은 저에게는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는 치유의 시간이 될 때가 많습니다. 마비노기만의 낭만을 접하며 그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또한 매듭을 짓다 보면 손에 굳은살이 생깁니다. 고통의 흔적이기도 한 굳은살을 보며 삶의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굳은살, 마음의 치유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진 생동감 넘치는 우리 현실을 소중히 여기는 생활이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을 담아 작업을 하고 있고, 이런 마음이 마비노기의 세계관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은 저에게는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는 치유의 시간이 될 때가 많습니다. 마비노기만의 낭만을 접하며 그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켈트 매듭을 표현한 마비노기 로고와 우리 전통 국화매듭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많은 분들이 마비노기 로고와 국화매듭이 닮았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실제로 대칭적이고 순환하는 구조가 정말 흡사해요. 매듭은 인류 최초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보관하고 들고 다니려면 끈이 필요했고, 끈은 묶어야 했으니까요. 그만큼 매듭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동서양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기술입니다. 서로 동떨어진 켈트 문화와 우리 문화가 유사한 구조의 문양을 만들었다는 것에 많은 분이 흥미를 느끼신 것 같아요. 연결성을 찾기 힘든 두 문화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이 게임과 공예의 유사성과도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듯 보이지만 온 세상이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전시를 관람하며 넥슨재단이 준비한 퀘스트 ‘덕수궁은 넥슨을 뿌려라’를 완료하면 인게임 아이템 쿠폰이 포함된 기념엽서를 증정했다. 마비노기는 인게임 아이템으로 ‘전통 초롱’을 제공했다. ‘전통 초롱’은 오로지 덕수궁 전시 현장에서만 득템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많은 밀레시안들에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경훈 디렉터는 “이번 보더리스 전시 주제인 '빛’과 연결되어 어울리는 아이템이 무엇이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밀레시안 분들이 전시에서 얻은 감동을 마비노기 안에서도 고스란히 이어나가 추억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고, 고민 끝에 전통 초롱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라며 전통 초롱을 아이템으로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덕수궁 덕홍전의 빛이 담은 전통 초롱은 마비노기 게임 안으로 들어가 밀레시안들에게 또 하나의 빛나는 추억이 되었다.
마비노기의 20년이 담긴 모닥불의 온기에 전통 초롱의 빛이 추가되었다. 보더리스 전시 <시간의 마법사 : 다른 세계를 향해>는 끝이 났지만 ‘전통 초롱’은 게임 속에 남아 눈과 단풍이 어우러졌던 덕수궁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