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를 나누던 중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로 잠깐 진지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인연과는 깊은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허용량이 초과돼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가족이나 친지야 당연하겠고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까지는 종종 만나면서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이상하리만치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부터의 인연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친구에게 제 인간관계의 허용량 때문에 그런 거 같다고 하니 재미있어하더군요. 그러면서 저에 대해서는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와 친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친구는 저를 살짝 낯설어하네요.
저는 저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러한 저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친구들은 이런 저만의 경계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죠. 그런데 사회 생활하는 동안 엮이게 되는 인연들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갑자기 찾아와 제 경계를 허물었던 사랑은 제외입니다.
저 같은 내향인은 그래서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두고 인간관계를 느슨하게 유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제 마음에는 공간의 제약이 있습니다. 선을 넘어도 되는 사람들을 허용하기에는 제 속이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라서요.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합니다. 저도 중년이 되니 이제 겉과 속이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그래서 대화보다는 글을 쓰면서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하고 에너지 소모도 덜한 것 같습니다.
이런 성격으로도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팽팽하지 않고 끊어져 있지 않은, 느슨한 연결고리로 이어나가고 싶군요. 인연이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