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곡 모임을 다시 열게 된 40대 아저씨의 마음

by 넥스트송

2025년 3월 넷째 주, 내 인생 두 번째 자작곡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두 번째”라는 말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나한텐 꽤 큰 결심의 결과였습니다. 40대가 되면 인생이 어느 정도 굳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반대로 더 물렁해졌습니다. 굳어지기보다는, 안에서 계속 뭔가가 새어 나오는 느낌이랄까. 그 새어 나오는 것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다시 모임을 열게 했습니다.


사실 “모임을 운영한다”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나 자신을 움직이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누군가에게 멋진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기보다, 나도 그 안에서 같이 버티고, 같이 질척거리고, 같이 완성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작곡 모임이 왜 필요해요? 혼자 하면 되잖아요”라고 쉽게 말하지만, 혼자 하는 창작은 생각보다 오래 외롭고, 그 외로움이 길어지면 결국 미루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내가 음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좋아서’도 있었지만, ‘살려고’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회사라는 곳이 내 정신을 아주 조용하고 꾸준하게 갉아먹던 시절이 있었어요. 낮에는 멀쩡한 척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숨이 가빠지고, 자다가 깨서 천장을 세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어느 날, 이상하게도 그 감정을 그냥 글로 쓰는 것보다 노래로 만들고 싶더라고요.




사람들은 대개 음악을 “멋져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내 안에서 터질 것 같은 것들을 예쁜 형태로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분노든 슬픔이든 자괴감이든, 그걸 그냥 날것으로 들고 있으면 나만 다치니까요. 가사로 정리하고, 멜로디로 붙여보면, 이상하게도 감정이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수백 번 흥얼거리다 보면, 그 감정이 나를 찌르던 방향이 조금씩 바뀌어요. 처음엔 날 찌르던 칼끝이, 어느 순간 나를 살리는 손잡이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자작곡 모임에서 한 곡을 끝까지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서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발표회를 끝냈을 때 느낀 카타르시스는, 정말 진통제 같은 수준이었어요. 몇 년 동안 붙어 있던 회사병이 그날 밤 한꺼번에 빠져나간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자작곡의 심리치료 효과를 은근히 믿는 사람이 됐습니다.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나는 “잘 만든 노래”보다 “진짜 같은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기술도 좋고, 소리도 세련된 음악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그런 완성도 경쟁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왜인지 모르겠는데 내 얘기 같다”라고 느끼는 노래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노래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창작은 늘 그렇더라고요. 남 얘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 얘기이고, 내 얘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의 마음에도 닿는 것. 회사에서 무너졌던 날, 사랑이 끝나고 남겨진 공기, 오래된 친구에게 말로 못 했던 고마움, 그런 걸 노래로 옮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 작곡 방식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멋진 테마를 먼저 세우기보다, 어떤 하루의 순간에서 생긴 작은 감정을 붙잡는 쪽이에요. “아, 이 느낌은 그냥 지나가면 안 되겠다” 싶은 찰나를 메모해두고, 그 메모가 노래의 중심이 됩니다. 세련된 표현을 얹는 건 그 다음 문제고요.


왜 다시 모임이 필요했는가


나는 성실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 말이 좀 웃길 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렇습니다. 노래는 계속 쓰고 싶고, 곡 조각도 늘고, 머릿속에서 완성본이 들릴 때도 많은데, 이상하게 완성은 잘 못 하더라고요. 혼자 하면 계속 고치게 됩니다. “여기만 조금 더 정리하면 완벽해질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몇 달, 몇 년을 끌고 가요.



최근에도 첫 자작곡을 만들어놓고 4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녹음을 했습니다. 녹음하고 나서도 발매를 못하고 계속 고민했죠. 그 과정에서 느낀 건 하나였습니다. 나한테는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것. 누가 옆에서 “이쯤에서 마무리해요”라고 말해주고, 내 핑계를 끊어주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요.


그래서 모임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운영자라는 이름을 달아두면 적어도 빠지지 않게 되니까요. 조금 치사한 방식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런 장치가 필요합니다.


첫 모임 날, 발길이 돌린 이유


첫날은 공교롭게도 댄스 공연 리허설과 시간이 겹쳤습니다. 보통이면 당장 코앞에 있는 공연을 택했겠죠. 실제로 나는 연습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모임 시작 직전, 이상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그쪽이 아니다.” 이유는 설명이 안 됐지만, 발걸음이 방향을 바꿨습니다.




나는 이런 순간을 믿는 편입니다. 인생이 늘 논리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날은 왠지, 노래를 향한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날 같았습니다.


모임에서 나눈 세 가지 질문


첫 모임은 늘 자기소개로 시작하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그 질문을 받으면서, 내가 왜 이 모임을 다시 열었는지 더 분명해졌습니다.


나는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내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본업은 따로 있지만, 결국 남는 건 무대 위의 내가 더 진짜 같다는 말도 덧붙였고요. 그리고 “내가 왜 음악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 앞에서는 잠깐 멈칫했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었거든요. 내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 음악이었고, 그걸 증명해준 첫 자작곡의 경험이 아직도 나를 밀어줍니다.


마지막 질문이 제일 솔직했습니다. “이 모임에서 기대하는 게 뭔가요?”

나는 답했습니다. 같이 노래 만드는 재미도 좋지만, 무엇보다 채찍질을 받고 싶다고요. 내 노래 조각들을 이번엔 끝까지 데려가고 싶다고요.


집에 돌아오며 다시 시작된 노래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1년 넘게 미뤄두었던 노래 하나를 다시 꺼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마음속에만 묵혀두던 노래였어요. 추억을 노래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한데, 영어로 써야 한다는 장애물 앞에서 시작조차 못 했던 곡이었습니다.


그날 모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 노래를 왜 피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게으름이라기보다, 완성하기 전까지는 책임 같은 게 생기니까 두려웠던 거더라고요. 그런데 모임에서 나온 피드백과 농담, 그리고 서로의 진짜 같은 고민들이 그 두려움을 조금 걷어냈습니다. “아,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그 단순한 확신이 다시 손을 움직이게 했어요.


그래서 1년 만에, 나는 다시 노래를 씁니다.


앞으로 이 모임에서 하고 싶은 것


나는 이 모임을 “잘하는 사람들의 자리”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미완성인 상태로 와도 괜찮고, 아무것도 못 썼다고 낙담한 사람도 환영받는 자리. 곡이 멋지게 나오는 날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못 나옵니다. 대신 그 못 나오는 날과 부끄러운 조각들이 쌓여서 어느 날 갑자기 한 곡이 됩니다.


나도 그걸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40대 아저씨가 자작곡 모임을 운영한다는 말이 참 거창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다 같이 노래를 끝까지 데려가기 위한 작은 약속일 뿐입니다.


언젠가 이 모임 사람들과 다시 발표회를 하게 된다면, 나는 그날도 똑같이 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이 노래로 바뀌는 순간을 나는 아직도 믿으니까요. 그리고 그 믿음 덕분에, 오늘도 또 한 곡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